李-朴의 `신뢰 딜레마 게임`


                              김형준 /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108일 만에 만났다. 정치권에서는 회동을 앞두고 친박 인사 복당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정치 현안에 대한 해법이 모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회동 결과는 만날수록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험난한 동반자 관계`라는 것만 확인되었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 대표직을 제안했느냐, 안했느냐의 유치한 진실 공방 싸움마저 일어나고 있다.  

협동인가, 분열인가  

 양자 회동 이후 불신이 더 깊어진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만남이 반복될수록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가 악화되는 `신뢰 딜레마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양자 회동은 게임이론에서 안전과 사회협동 간의 갈등을 묘사한 `사슴 사냥(stag hun) 게임`을 연상케 한다.  

장 자크 루소는 두 사람이 사냥하는 상황을 빗대어 이 게임을 설명하고 있다. 각자 다른 사람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사슴을 사냥할지 아니면 토끼를 잡을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만약 한 사람이 사슴을 잡기 원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 문제는 토끼가 사슴보다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 게임은 두 사람이 협조해서 사슴을 잡든지, 아니면 협조하지 않고 각자 토끼를 잡는 것으로 해결되는 특징을 보인다.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두 사람이 협조해야만 사슴을 잡을 수 있다는 비유가 깔려 있다.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사슴은 바로 `보수 정부의 성공`이고, 토끼는 개별 정치인의 위상이나 인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거듭된 양자 회동에서 두 사람은 정치력의 빈곤을 보이면서 어려운 사슴 사냥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손쉬운 토끼 잡기에만 매몰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국정은 혼란스럽고 민심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법은 두 사람 인식의 대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탈여의도 정치`의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경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내 최초로 비주류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당내 경쟁자는 없다"고 언급하는 등 비주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비주류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나는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고 재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신뢰 회복`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 박 전 대표도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자신의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제로섬 게임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애석하게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있는 이상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다.  

둘 다 승리하든지, 아니면 둘 다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였던 김근태 전 장관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고 맞장떴으나 결과는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실패한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박 전 대표는 당 주류가 교체된 상황에서 과거의 주류 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이 신뢰를 회복해 진정한 국정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고통스럽더라도 함께가야  

양측 모두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하는 학습을 시작해야 하고, 또한 한 쪽의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는 `치킨 게임적 사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출국하면서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에 대해 5월 시한의 최후통첩을 했다. 한 쪽을 굴복시켜 치킨(겁쟁이)으로 만들고 자신은 계파의 영웅이 되는 자세로는 신뢰 게임이 성립되기 힘들다.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함께 가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서로가 승리하는 사슴 잡기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정권교체를 가져다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 모른다.

*  이 글은 매일경제에 게재되었습니다.


Trackback URL : http://basilica.co.kr/trackback/149 관련글 쓰기

« Previous : 1 : ... 600 : 601 : 602 : 603 : 604 : 605 : 606 : 607 : 608 : ... 734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