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다시 광주에 서다(1)


                                                                             공희준 / 정치평론가

가벼운 더위마저 느껴지는 4월의 첫 휴일이었다. 그러나 제18대 총선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는 결코 더울 수도, 쉴 수도 없는 날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웃동네에서 요란한 싸움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싸움의 한쪽 당사자는 식구들은 물론이고 회사직원들까지 선거운동원으로 출동하는 총력전 체제를 펼쳤다. 그가 동원한 식구들에는 대한민국서 가장 인기 있다던 여자 아나운서가 포함되었고, 유세현장에 차출된 회사직원들 가운데는 한국농구가 배출했던 최고의 선수가 끼어있었다.

노현정과 허재가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를 지원하고자 동작구에 나타났다. 이들의 동행이 정몽준의 득표활동에 실제적으로 도움을 줬을지는 미지수다. 노현정은 된장녀 논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였다. 허재는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민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결정으로 말미암아 농구팬들의 원성을 샀다. 허재가 감독으로 있는 팀은 KCC 농구단이다. KCC 농구단의 홈 경기장은 잘 알려졌듯이 전주에 있다.

KCC는 현대가문이 운영하는 기업이다. 전주 현지에서 4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부지런히 준비해야만 할 농구팀 감독을 서울로 갑자기 불러낸 속내는 정몽준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자의 연고지가 바로 전북인 이유에서다. 정동영이 전주의 안전한 지역구를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농구대통령 허재가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정몽준의 자원봉사자로 사당동 뒷길을 어색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진풍경은 연출되지 않았을 터. 재벌가 젊은 사모님으로 우아하고 화려한 삶을 즐기던 노현정 역시 재래시장 순대장수 아줌마들과 어울리는 고역(?)을 겪지 아니했을 테고.

국민원로는 2006년 봄 이후로는 정동영을 편들 기회가 없었다. 이번 국희의원 선거도 정동영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로 지나갈 줄 알았다. 정몽준의 느닷없는 서울 상경과 무차별적 인해전술은 나로 하여금 정동영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고야 말았다. 순망치한의 원리 탓이다.

정동영이 정몽준한테 패배해 한나라당 세력이 노량진 턱밑까지 밀고 들어오면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괴롭고 고달프다. 이명박 정권을 앞세운 강남부자들의 입김과 고소영 인맥의 영향력은 이수교에서 저지되어야 옳다. 동작이 무너지면 영등포가 무너지고, 영등포가 넘어가면 구로가 넘어간다. 서울 서남부를 무대로 맹위를 떨치는 도미노 이론을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한다면 한나라당을 강남과 영남으로 돌려보내는 과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정몽준을 울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나라당 제몫 찾아주기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왕자는 왕국에 살아야 어울린다. 정몽준에게는 울산이 본인을 위해서나 지역주민들을 위해서나 최선의 터전이다. 동작구는 공화국의 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정몽준은 현대재벌의 신민(臣民)들이 거주하는 장소로 되돌아가기 바란다. 정몽준의 울산 귀향은 한나라당이 강남과 영남으로 복귀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한국사회에서 광주는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적 지명이다. 광주정신이 머물러야 할 공간을 영남 패권주의와 강남의 천민자본주의가 찬탈할 적마다 사회는 병들고, 역사는 후퇴했으며, 서민들은 희망을 잃었다.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한층 가속화된 강남의 발호와 영남의 준동은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절정기를 맞이했다. 울산에서 안방대장 노릇하던 정몽준이 수도 서울 입성을 목전에 둘 정도로 영남의 힘이 세지고 강남의 권력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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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는 민주당 정동영 후보

광주약국! 우연인지 필연인지 참으로 오묘한 이치였다.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의 선거유세는 총신대역 남성시장 입구의 광주약국 앞에서 진행됐다. 넓은 대로를 건넌 저쪽은 서초구다. 서초구와 동작구를 가르는 도로는 언제부터인가 문명과 문명, 체제와 체제, 세계와 세계를 나누는 분단선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광주약국 길 건너편에는 미국유학을 광고하는 영어학원의 간판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미국을 흠모하고 영어를 숭배하는 종자들일수록 극렬하고 맹목적으로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다.

추종자들의 염원해 호응해 이명박 정권은 영어와 미국을 출세의 보증수표로 만들려고 광분하는 중이다. 한국보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2MB 정권이 동작구 한복판으로 트로이 목마 하나를 침투시키려 획책하고 있다. 목마는 유권자들을 향해 외친다. “부자후보 찍어서 여러분들도 부자 되세요!”라고. 목마에게 묻고 싶다. 만약 장동건이나 배용준이 선거에 나았을 때 그들을 찍어주면 국민 모두가 장동건과 배용준처럼 꽃미남 한류스타가 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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