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이 사는 법
- Posted at 2011/02/24 19:53
- Filed under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대학생 주거문제의 해결책도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에 있다 -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지난 6.2 지방선거의 혜택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무상 급식과 무상 교복, 무상 준비물 등의 정책들이 시행되기 시작한 덕분이다. 그러나 대학생을 둔 부모님들의 한숨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 엄청나게 오른 등록금뿐만 아니라, 1,000만 원에 이르는 각종 교육비 부담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의 전세난과 월세 폭등의 영향으로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내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26만 9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중 14만1,000명 정도가 지방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서울 소재 대학 기숙사의 규모는 전체 지방 학생 숫자의 12.4%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학교 주변의 하숙집을 찾거나 다소 멀리 있는 곳이라도 저렴하게 지낼 수 있는 지하방, 옥탑방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대학 입시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더니, 대학생이 된 후에도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원천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있는 집안 자녀는 수 천만 원의 보증금을 내고, 첨단 보안장치뿐만 아니라 방범시설 등 모든 현대적 설비가 갖추어진 학교 앞의 고급 주거지를 얻어 거주한다. 보통 학생들은 하숙집을 찾아 가야하는데, 물가 상승에 따라 하숙비도 오르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 갈수록 부담이 점점 늘어난다.
서울에 소재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재학생 숫자 대비 기숙사 숫자가 너무 적다. 기숙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전체 학생의 10-20% 수준이다. 서울 모 대학의 경우 전원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선전하지만, 그 대상은 1학년에 국한되고 2학년 때 부터는 모두 다른 숙소를 찾아야만 한다.
이렇게 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제시한 정책은 국공립, 사립대학들을 막론하고 민자 기숙사를 건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여러 대학들이 BTL 사업 방식으로 이른바, 호텔 수준(?)의 기숙사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민자 기숙사에 거주하는 비용도 호텔 급이라는 것이다. 이들 민자 기숙사는 기존의 학교 기숙사에 비해 20만 원 이상, 많게는 3배 이상을 학생들이 부담해야 한다.
저소득 가정 출신 대학생들은 한 두 시간의 통학 거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시 외곽의 저렴한 자취방을 찾아야 한다. 대학가 주변에는 이미 월세도 너무 올랐기 때문에 싼 방을 찾아 시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다. 여름에는 찜통 같은 더위와 겨울에는 가히 냉장고 수준의 추위에 시달리는 방, 냄새 나는 지하방이나 쪽방 수준의 방이라도 책상을 두고 옷장도 둘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구할 경우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좁디좁은 고시촌의 공부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두 번째 정책 대안은 대학생용 보금자리주택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저소득가구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LH는 자체 매입한 대학교 인근의 다가구 주택을 개·보수해서 냉장고·세탁기·가스렌지·책상·의자·옷장 등의 기본시설을 구비한 대학생용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실시중이다. 이는 시중 전세가액의 30% 수준으로 임대를 할 수 있고, 보증금 100만 원에, 월 임대료가 1~16만 원 수준(평균 약 6만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임대기간도 최초 2년에서 시작하여 1회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장 4년을 거주 할 수 있다. 여기 당첨만 되면 재학 기간 동안의 주거 문제가 해결되는 획기적인 정책이다.
문제는 물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6개 광역시에서 전국 대학생용 보금자리주택 241가구(297명)에 대한 입주자를 모집한 결과 2,247명이 몰려 평균 7.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97명을 모집한 서울에 1,167명이 신청하여, 12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26만 명의 대학생들이 거주해야 하는 서울에 100가구도 되지 않는 대학생용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해 놓고 전체 학생들의 주거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홍보를 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학등록금 자체가 저렴하거나 학생회비 등 일부 비용을 제외하고는 국가에서 지급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대학생들의 숙소와 식사도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받는다. 대학 자체가 별도로 담장이나 울타리 없이 도시의 한 부분으로 발전하면서 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 외에도 대학도시의 공공주택이나 지역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방들을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나라들에서는 “당연한 정책”이다. 정부에서 대학생들의 주거비를 지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을 얻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학이 입지한 도시의 내수도 활성화되고, 대학도시의 주민들은 간접적으로 임대 소득을 올리게 된다.
물론 이것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가구원의 숫자에 따라 규정된 필수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이러한 보편적 주거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대학생들에게도 필요한 거주 공간이 제공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생 주거복지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세계적 무한경쟁으로 대학 교수들조차 매년 게재되는 SCI급 논문 숫자를 기준으로 재임용 여부를 결정 받고,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 R&D에 연간 13조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지만, 정작 대학생들을 위한 주거 공간은 없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눈을 부비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영어 학원비와 어학 연수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30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인권을 물론,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도 어렵다.
학창시절부터 소득에 따른 양극화를 분명하게 경험한다. 최소한의 주거 공간이 없는 것이 어떤 삶인지 체험한 대학 졸업생들은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하지 못하면 청혼할 생각도 할 수 없다. 출산을 하더라도 자녀 양육비와 주택 융자금에 찌든 삶을 살 걱정에 차라리 “무자식 상팔자“를 택해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 학생 때부터 집 없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겪은 젊은이들은 전체 인생을 주택 마련에 투입한다. 내 집 마련을 평생의 목표로 살아온 기성세대들의 삶이 그대로 전이되는 것이다. 미팅 나온 대학생들도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을 통해 상대편의 생활수준을 가늠한다.
대학생 주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단기적으로 학교 주변에 대학생 보금자리 주택을 확대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구입한 미분양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을 대학생들에게도 할당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민자 기숙사가 아니라 수천억 원씩 적립되어 있는 대학발전기금으로 저렴한 기숙사를 증설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대학생이든 저소득층이던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주거 공간이 제공되도록 하는 ‘보편적 주거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집권당과 보수진영이 보편적 복지를 비난하기 위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세금폭탄”을 말하고 있지만, 치솟는 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은 이제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고 있다. 대학생이 된 자녀의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산동네를 헤매는 경험을 한 학부모와 대학생들은 이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의 의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절박한 심정의 국민들에게 한 가닥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에게 투표하는 것이다.(2011. 2. 24)
글.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