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최고위원은 한 말씀 더 하시라
- Posted at 2010/11/05 22:00
- Filed under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중도개혁보수정당 제대로 하려면
감세철회를 넘어 증세정책으로 전환해야
최근 한나라당이 부자감세 논쟁으로 뜨겁다. 지난 달 27일 당 대변인이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 철회를 정두언 최고위원이 요구했고, 당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위에서 감세 철회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가 반나절도 안 돼서 “공식적인 검토를 시작할 것인지를 논의하겠다는 말”이라며 사실상 입장을 번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세 철회’ 쪽으로 가려던 당 지도부의 입장을 뒤집은 것은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의 전화 한 통화였다고 한다. 강만수 특보는 청와대 경제라인의 좌장이다. 그러니 그의 말은 대통령의 뜻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가 “감세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특정 정치인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쐐기를 박고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감세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한나라당 지도부는 강만수 특보 보다는 정두언 최고위원의 손을 들어줬어야 맞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 연설을 통해 ‘중도개혁보수정당’의 길을 가겠다고 했고, ‘70%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정한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고 박근혜 의원도 연일 ‘복지국가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한나라당은 당연히 부자감세 철회에 나서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국, 한나라당은 이번 논란을 통해 다시금 ‘부자정당’의 진면목만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준 꼴이 되었다.
사실, 정두언 최고위원의 요구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 행해진 전반적인 감세정책의 철회가 아니라 2013년 시행될 예정인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에 대한 감세철회에 국한되는 내용이다. 이러한 최고세율 인하 방침을 철회하는 것으로 2012년에 1.4조 원, 2013년에 2.3조 원, 2014년 3.7조 원 등 2010년에서 2014년 동안 5개년 중기재정운용계획 상 7.4조 원의 재정 여유분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의 서슬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소리는 공식 석상에서 조직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앞으로 더 커져갈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중간층을 확보하기 위해 감세정책의 철회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감세논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감세를 하면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켜 경제가 성장하므로 궁극적으로 세수가 확대된다고 하나, 지금까지 통계상으로 검증된 이론이 아닐뿐더러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껏 감세로 인해 소비나 투자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자감세를 당론으로 하는 보수정당 최고위원의 공식 발언으로 나온 것이다.
비단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꾸준히 감세 정책을 시행해왔다. 국민의 정부 때 최고소득세율을 40%에서 36%로 내렸고, 이후 참여정부 때는 다시 35%로 내렸다. 우리나라의 2010년 조세부담율은 19.3%로 추정되는데 이는 “OECD 평균인 26.6%(2008년)에 비해 7.3% 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율에 도달하려면 국민들이 현재 내고 있는 세금보다 약 37%나 더 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OECD 평균을 말하는 것이지,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꺼번에 이 정도 수준까지 갈수는 없지만, 단계적으로 몇 년에 걸쳐서라도 적어도 이 정도는 증세를 해야 한국적인 현실에 맞는 최소한의 복지국가 건설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변신하고 ‘선진복지국가’를 말하려면, 더 이상 최고세율 인하 철회 등의 어정쩡한 문구 뒤에 숨지 말고, 공개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의 노선 전환을 표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이 내놓은 ‘부유세’를 두고 많은 논쟁을 했다. 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진보정당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것이었다. 그리고 천정배 최고위원은 프랑스의 예를 들며 ‘사회복지세’를 주장했다. 민주당의 이런 증세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대표는 이미 국회에서 ‘사회복지세법’을 발의해 놓고 있다.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재원마련 방안으로서 증세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오늘날 독일을 복지국가로 만든 시초는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비스마르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책에는 영국 보수당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정권이 보수정당으로 넘어가도 복지제도의 근간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탄탄한 조세 기반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바, ‘역동적 복지국가’든 ‘선진복지국가’든 증세는 필수적인 것이다.
바야흐로 시대는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모두 좌클릭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민심의 흐름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은 이제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종식시키고 모든 국민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주거, 보육, 의료, 고용 등의 삶의 전 분야에서 충분한 사회서비스를 받는 복지국가를 건설하자고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런 민심에 모든 정치세력이 적극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 진보건 보수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누가 이러한 국민의 복지요구에 더 잘 부응하느냐에 따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받을 성적표가 달라질 것이다. ‘어떤 정치세력이 복지국가를 더 잘 만들 수 있느냐?’라는 경쟁을 벌이는 것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다.
감세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이번 감세철회 논쟁을 통해 한나라당이 부자정당임을 다시금 확인받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지금이라도 감세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꿈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 나가기를 바란다.
일단 2013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감세부터 철회하고, 더 나아가 현행 조세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통해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위상과 어울리는 복지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보장하기 위한 정책 입안과 재원 마련에 나서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한나라당은 ‘선진복지국가’를 논할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중도개혁보수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좀 더 확실하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소극적인 감세철회 주장을 넘어 과감한 증세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로는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도 없고, 복지 수요의 자연증가율을 고려한다면 70% 복지는 고사하고 기존의 취약계층 복지조차 확대할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진복지국가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적극적 조세재정 정책, 즉 누진적 증세정책을 합리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보편적 복지를 위한 필요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두언 최고위원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으며, 이제 ‘한 말씀 더 하시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10.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