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수당도 없는 나라
- Posted at 2010/05/13 22:56
- Filed under 복지국가소사이어티
18대 국회에서 4가지의 아동수당 관련법이 국회에 제출된 바 있으나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양승조 의원(2008.9.4)과 곽정숙 의원(2010.4.26)이 제출한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은 아동수당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며, 아동수당에 관한 법률안 (이낙연. 2009.11.25)과 아동수당 법안(김우남, 2009.12.9)은 별도의 아동수당 지급을 규정한 제정 법률안이다. 그러나 막대한 세수 감소를 초래하는 부자감세 법안과 4대강 개발에는 적극적이었던 정부여당이 아동수당과 관련된 법안에 대해서만큼은 대규모의 예산 대책을 수반해야 한다면서 논의 자체를 미루고 있다.
그러나 아동수당 제도는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1940~50년대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오래된 제도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모든 아동에 대하여, 의무교육인 고등학교 졸업 연령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유럽 44개 국가 중에서 안도라공국과 산마리노와 같은 소규모 도시국가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50개 국가 중 홍콩, 태국, 스리랑카, 이란, 이라크 등을 포함한 13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부모가 있든 없든, 부모가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모든 아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이 제도를 일찍부터 시행하고 있다. OECD 30개 국가 중 한국, 미국, 멕시코 등만이 아직 아동수당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2009년 7월부터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이용하지 않는 0-1세 아동 11만 명을 대상으로 월 10만 원의 <양육수당>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양육수당은 시설을 이용하는 아동들의 보육료․교육비 지원과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1) 보육시설 및 유치원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들 중에서, 2) 차상위 계층 이하의 소득을 가진 가정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3) 0~1세 아동에게만(11만 명) 지원하는 제도이다. 즉 수혜 대상이 크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양육수당은 아동수당과 유사한 이름의 정책이지만 그 내용과 목적이 아동수당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의 <양육수당>은 <아동수당>과는 달리 아동 양육을 빌미로 부모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육아 지원 시설의 활용을 기피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가능하면 가정 보육서비스 등 현물 서비스로 제공하는 방법들을 채택하고 있다.
아동수당은 ‘아동이 있는 가구’가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소비지출이 많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을 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아동수당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부모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어 출산율의 제고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또, 아동수당 제도는 이전 지출을 통해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의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긴요한 정책이다. 아동수당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아동을 매개로 이전(移轉) 지출을 발생시키고, 결국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내수가 약한 우리의 여건에서는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 이전 지출 정책은 내수경제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아동투자 사업에 대한 분석보고서(2003, National Institute for Early Education Research, U.S.A.)는 “아동에 대한 조기투자는 $1당 $3.78의 사회 환원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제출한 바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동에 대한 투자는 비용 대비 산출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효율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아동 1인당 복지지출(아동수당+출산·육아수당+빈곤가정현금지급+기타)은 연간 40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의 5분의 1 수준이다. 우리보다 무려 100배 이상 아동을 위한 사회적 지출을 하고 있는 스웨덴은 연간 3,961 달러, 프랑스 2,162 달러, 독일 1,707 달러, 영국 913 달러, 심지어는 아동수당이 없는 미국도 297 달러에 달한다. 이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아동복지 지출은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2009. OECD).
물론, 아동수당은 많은 재정의 투입을 필요로 한다.
OECD 국가들의 경우, 연간 근로자들의 소득(APW, average production work)을 기준으로 5-13% 수준을 아동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국가마다 정부의 재정 상황이나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아동수당의 규모가 다르게 설계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득계층별 차등지원 방식으로 아동수당을 도입하자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아동수당을 사회적 시민권(인권이자 아동의 권리)으로 보고 있는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보편적 아동수당의 도입을 요구한다. 아동수당은 비록 수당의 액수가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소득계층별 차등 지원이 아니라 아동 ‘누구나’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수당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민주당 하토야마의 집권을 가능하게 하였던 중요한 정책공약 중의 하나가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이었다. 실제로 일본 민주당은 집권 후에 토목과 건설 예산의 18%를 삭감하여 중학교 졸업 전까지 1명당 연간 31만 2,000엔을 자녀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이 있는 가구>에 지원하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다행히 이번 지방선거에 후보로 나선 분들이 아동수당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처음으로 내걸기 시작하면서, 이 제도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공론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은 기존의 양육수당을 올리거나 지급대상을 늘리고, 장애아동 수당이나 한 부모 가정 자녀양육 수당, 입양자녀 양육수당, 입양장애아동 양육보조수당, 농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사업 등의 이름으로 지급액을 늘릴 수는 있어도 자녀를 가진 국민 모두에게 지급되는 보편적 아동수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진보 후보와 보수 후보를 구분하는 뚜렷한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평균 재정자립도가 54%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취약한 예산 여건 속에서, 아동수당 제도는 지방정부가 의지만으로 올바르게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 지방의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출생아와 1세아 등 2년 동안에 매월 3만 원 정도를 지급하겠다는 현실적인 공약을 제시한 후보도 있다. 푼돈에 그치는 아동수당은 오히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손상시킬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건설과 토목 예산을 줄여서라도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보편적 복지로서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을 공론화한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일부 지자체에서는 적은 수준에서라도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호화청사를 짓거나, 불필요한 도로가 확장되는 것보다 아동수당 제도가 훨씬 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체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빠르게 인근 지자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서민과 중산층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기가 낸 세금의 혜택을 받아보는 경험, 보편적 복지의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복지국가를 향한 거대한 첫 걸음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아동수당은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데서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2010.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