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장관에게 - 이게 슬픈 일인 것을 아십니까?
- Posted at 2008/03/18 08:24
- Filed under 시사
[공개 서한] 유인촌 장관에게
김민웅 / 성공회대 교수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막바지 고개를 넘어가면서 뒤에 남기고 가는 선물처럼 여겨지는 비였습니다. 그렇게 느낀 까닭은 한참이나 후덥지근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는 누구에게나 고마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효석(孝石) 문화제"가 정작의 문학정신은 사라진 채 물건 파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낙담했던 저는, "유인촌"이라는 이름 하나에 기대를 안고 봉평의 <달빛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봉평의 <달빛 극장>으로
메밀꽃 피는 언덕에는 효석의 문학은 간 곳 없고 메밀상품만 잔뜩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봉평 주민들의 삶은 문학정신 운운하기에는 힘겨웠던 탓일 겁니다. 그와 함께, 이 땅의 문화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달빛 극장>이 준비했던 야외 페스티발은 결국 열리지 못했습니다.
무대를 꾸미고 있던 젊은이들은 하염없이 비를 쏟아내고 있는 하늘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폐교의 강당 마루 바닥에서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유인촌을 보는 것만으로도 <달빛 극장>을 아쉽게 돌아서는 마음에는 기쁨이 뿌듯했습니다.
이 후미진 곳에 누가 과연 찾아올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연기 하나에 인생을 건 청년들이 유인촌의 카리스마에 매혹 당하면서 자기내면의 소리를 터뜨려 나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장면은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아! 저런 선생님과 함께 뒹굴면서 청춘의 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겠구나, 그런 부러움도 느꼈습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희곡도 써보고 연출도 해보고 연기도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입장에서 그런 장면들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나그네처럼 지나다가 잠시 본 현장이었지만 학생들은 유인촌의 말과 눈빛 그리고 몸짓 하나 하나에 온통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마룻바닥 이쪽에서 저쪽까지 무대의 경계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에 몰두하도록 때로 포효하기도 하고 때로 날카롭게 쏘아보기도 하는 유인촌에게서는 문화적 열정과 후학들에 대한 성실함이 그대로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오늘의 시대에 쉽게 얻기 어려운 사숙(私塾)의 기회인 셈이었습니다.
"방 빼!" 장관?
그 유인촌이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방 빼!"였습니다. 무대 위의 연기가 아니었겠지요. 각본을 다른 사람이 써 준 것도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중요한 공직은 정권이 교체되면 생각, 철학, 세계관이 다른 인사들은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마도 그런 뜻에서 했던 말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서로 손발이 맞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잘 풀려나가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자연스러워지려면 매우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유인촌 장관의 문화정책이 가진 철학, 세계관, 그리고 방향이 먼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 유인촌 장관의 시기에는 이 나라 문화가 이런 쪽으로 나가겠구나, 하는 지표가 선명할 때 "방 빼!"라는 말이 없어도, 도저히 서로 어울리기 힘들겠다고 여겨지면 사임을 할 것이고 아니면 마음을 같이 맞추어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전제 하나
가령, 그렇지 않아도 인문학의 현실이 이 나라 문화역량의 저력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인촌 장관의 입에서 출판문화 발전을 위한 고뇌에 찬 발언이 먼저 나왔다면, 그래서 이런 노력을 기울여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인재와 정책은 무엇인지 사회적 설득과 감동이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우격다짐의 내쫓기"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더더군다나 전혀 문화적이지도 않고 말입니다.
이런 것 혹시 아십니까? 상대방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어서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원한을 사는 일이 됩니다. 그렇게 비게 된 자리에 가는 이는 다른 사람들이나 부하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받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문화의 담론은 실종되고 권력의 논리만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 나라의 정신적 좌표에 대한 지적 통찰과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문화가 단 시일 내에 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많은 투자와 정책적 인내, 그리고 오랜 성숙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문화관광부 장관의 다그치는 듯 한 모습은 아무래도 보기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어령 선생의 경우, 문화부 장관을 지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이 땅의 지적 풍토에 소중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의 시대에 태어난 그는 디지털의 미래를 일찍 내다보고, 이 두 개의 논리와 세계관을 우리의 문화전통 속에서 새롭게 만나게 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연기자 유인촌을 한국인들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장관 유인촌에게서도 그런 대중들의 사랑을 계속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일까요?
이게 슬픈 일인 것을 아십니까?
장관의 말 한 마디로 자리를 내놓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슬픈 일입니다. 자신도 그랬다고 하는 반론은 자신에게 적용시킨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독선이 됩니다. 문화는 독선을 반기지 않습니다.
이번 일, 두고두고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뜻대로 되었다고 자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문화적 지식인
봉평의 <달빛 극장>은 버려진 학교에 생명의 숨을 다시 불어넣은 소중한 작업입니다. 그건 난폭함과 거리가 먼 문화적 성취입니다. 우린 난폭한 장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세상을 위로하는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인문학적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달빛을 살포시 잡는 그런 문화적 지식인 유인촌 장관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기대, 부디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유인촌을 이런 식으로 잃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이글은 프레시안( 2008. 3. 17)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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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참 안타깝습니다.
방법적인 면에서 어쩌면 조급한 마음에 서투르게 일을 처리했다고 칩시다.
인사청문회때 조금 봤는데, 아직은 공직에 어색한 투가 보이더군요.
그러면, 아직은 때묻지 않은 문화정책을 먼저 발표를 했어야 공감이 더 가는게 맞을 것 같네요.
인문분야도 살리고, 국민 복지에 걸맞은 문화정책들, 정말 힘들어도 시민들이 쉬고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그런데, MB의 선봉장이 되어서 나타났으니...
장관 평균 임기가 짧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문화부 장관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소신껏 문화부일만 열심히 하시면 다른 분야로 가서도 또 시민들의 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위만 바라보지 마시고...(비록 임명은 MB가 했었도...)
지금 여러 분야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듣고 있겠지요.
그걸 듣고 판단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고...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건 왜일까?(최회장님의 둘째 아들이 그리워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