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之南 윈난여행(8) - 100년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간다
- Posted at 2008/03/13 10:48
- Filed under 여행
최정규 / 여행작가, 국내외 여행기획자
리장의 나시족과 그 문화 (2)
그린피스보다 더 진보적인 인간과 자연의 합일사상 - 동파교
제사장인 동파는 아직까지도 나시족의 최고 지식인이자 어른으로써 존경받고 있다. 동파학교도 있으며 전통적인 동파교의 제사의식도 전승되고 있다. 리장에 있는 흑룡담공원에 가면 동파문을 연구하는 연구소와 다양한 나시족 고대건축, 그리고 동파 제례의식을 거행하는 성소도 볼 수 있다.
동파교는 해, 달, 별, 물, 나무, 산, 동물 등 자연물을 숭배하는 종교인데 나시족들은 자연신이 청정한 물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흑룡담공원과 같은 청정호숫가에 제장(祭場)을 마련해 고대로부터 제례를 지내온 것이다.
흑룡담공원과 나시족 옛집
동파교의 자연물 숭배사상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들인 동파가 쓰는 다섯개의 그림판이 있는 오폭관의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오폭관은 동파가 신에게 제사 지낼때 쓰는 법관인데 다섯개 그림 중 가운데 폭은 살영와등대신이라는 중요한 신 또는 동파교 조사를 그려 넣고 나머지 네 폭의 그림은 동, 서, 남, 북방의 보호신을 그려 넣는데, 그 그림의 내용을 보면 동쪽을 관장하는 신은 산양의 머리에 인간의 몸, 서쪽을 관장하는 신은 사슴의 머리에 신의 몸과 뱀의 꼬리, 남쪽을 관장하는 신은 개의 머리에 인간의 몸과 뱀의 꼬리, 북쪽을 관장하는 신은 사람 머리에 신의 몸과 뱀의 꼬리를 가진 형상이다. 무슨 뜻인지 짐작되시는가?
모두 인간과 동물과 신의 결합 형상이 아닌가?
동파교에서는 동물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간은 원래 하나의 아버지를 둔 배다른 형제였고 많은 도움을 서로 주고 받았는데 인간의 욕심에 의해 그 관계가 어긋나게 되었고, 그 어긋난 관계를 복원하는 의식이 바로 동파교의 제사의식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자연을 파괴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무작정 밀어버리고 개발하는 식의 인간 행동이 가져다줄 재앙을 동파교에서는 예언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동파연구소 입구에 오폭관이 크게 장식되어 있다
동파궁의 나시고악 공연모습 - 뒷자리 어른의 머리에 씌여진 오폭관을 볼 수 있다
나시족 여성의 옷 뒤에 달린 둥그런 고리는 7개로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이것 역시 자연물숭배사상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동파교 제례의식을 흑룡담공원이나 백사마을의 전시관, 그리고 쿤밍에 있는 운남민족박물관에서 사진들로만 보았을뿐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이들의 제사의식을 들으며 무릎을 탁!..친 부분이 하나 있으니…
동파교의 자연신에게 지내는 제사 때는 보통 다른 제사 때 볼 수 있는 소나 양, 닭 같은 짐
승들을 죽여 제단에 바치는 장면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닭 등을 바치기는 하지만 죽이지 않고 산채로 바쳐 곧 자유롭게 해 준다고 한다. 동물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자연신을 즐겁게 하고 올바른 관계회복을 위한 방법으로 제물인 동물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윤회와 생명사상으로 행해지는 불교의 방생과 비견되지만 그것이 자연에 대한 다짐이자 약속이라는 측면에서 불교와는 다른, 나시족들의 사상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가장 멋진 부분인것 같다.
흑룡담 공원의 동파 祭場 입구
윈난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 나시고악
리장고성에서 나시족들의 동파 제례의식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고 그들의 복장도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나시고악(古樂)을 연주하는 곳이다.
나시족들의 민족 음악인 나시고악은 예술적 가치와 수준이 높은 민속음악이었으나 중국의 다른 수많은 문화적 내용들이 그렇듯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의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금지되었다. 모여서 연주하는 것만 금지된 것이 아니라 나시고악을 채록한 악보들까지 모두 끄집어내어 태워졌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궁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자금성도 문혁 당시 불태워질뻔 하였으니 홍위병들의 위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그 후 1980년대가 되어 예전 나시족 음악을 기억하는 노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다시 기억을 살려내어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차차 음악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악보도 새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다시 나시족의 옛 음악이 되살아난 것이다.
오늘날 쿠바 음악을 갑작스레 세계적으로 알린 노장들의 연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빗대 중국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 여러 책에서 소개하는데 과연 가져다 붙이기도 잘 붙인다 싶겠지만 일단 직접 가서 그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수긍이 될 것이다.
현재 리장의 고성안에는 나시고악을 상설 공연하는 공연장이 두 곳 있으며(동파궁과 나시고악원) 흑룡담공원의 호수 옆 야외무대에서도 시간을 맞춰가면 나시고악 연주를 관람할 수 있다.
그 중 많은 여행객이 찾는 동파궁은 정통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고는 하지만 나시고악연주에다 나시족의 춤과 노래, 제례를 조금씩 엿볼수 있게 끼워넣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공연에 집중하게 함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동파궁 공연모습
동파경에 나오는 나시족의 창세신화와 3수 분화의 세계관
요즘 중국신화연구가인 김선자씨의 중국신화 이야기가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데, 그 시작이 중국의 윈난 지역 나시족과 백족의 신화이기에 윈난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기사를 많이들 찾아서 읽어본것 같다.
나시족의 창세신화는 동파교의 경전인 동파경에 나오는 내용인데 동파경 자체가 심오한 상형문자로 되어 있어 여러 동파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조금씩 엇갈리고 또한 그것이 나시어에서 한어로, 한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내용이 틀어지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여러 내력깊은 민족과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창세신화의 중요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훌륭한 창세신화 중 한편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곳에 책 수십장에 달하는 동파교의 창세신화 서사시를 모두 옮겨 적을 수는 없으나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어 밝힌다. 그것은 ‘3’ 과 ‘9’ 라는 숫자에 관한 부분인데, 3과 9가 언급된 문장들만을 먼저 한번 추려 본다.
‘삼(三)이 구(九)를 낳고, 구가 만물을 생성시킴에’
‘세 개의 잎사귀를 가져와 땅 위에 자리를 마련하고, 세 덩이의 푸른 풀을 가져와 둥지에 깔고, 세 개의 흰구름 덩이를 가져와 알을 낳을 바구니를 마련했다’
‘은여은만은 흰색 알 아홉쌍을 낳았다’
‘한 쌍의 하얀 알은 하늘을 여는 아홉 형제들로 변하였고’
‘부금안남은 아홉 쌍의 검은 알을 낳았고, 이 아홉 쌍의 검은 알이 다시 부화하여 아홉 가지 요괴와 악마를 만들었으며, 또 아홉가지의 귀신과 괴물을 만들어냈다’
‘보석도끼로 들소 머리를 세 번 내려찍으니 들소가 세 번 소리를 지르는데’
‘하얀이슬 세 방울로 세 가닥의 얼음기둥을 받치고, 세 가닥의 얼음기둥은 석 줌의 검은 흙을 받치고’
‘아홉 필의 신마가 아홉 개의 신석을 지키고, 아홉 개의 신석이 아홉 마리의 표범을 지키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가죽부대를 만들어 아홉 가지의 곡식종자를 집어넣고 아홉 줄의 쇠사슬로 가죽 부대를 묶는데’
‘몸이 깨끗하지 않다면 아홉 갈래 강에서 씻기도록 하라’
‘나를 보러 오려거든 날이 예리한 아홉 사다리를 올라야만 한다’
‘아흔아홉 곳의 삼림을 다 베고, 아흔아홉 곳의 나무를 다 태우고, 아흔아홉 산지에 종자를 뿌렸다가, 아흔아홉 산지에 뿌린 종자를 모두 주워 담고’
동파경에 등장하는 나시족의 창세신화에는 이 외에도 숫자 3과 9가 등장하는 문구가 무척 많다. 물론 가끔 6과 7등 다른 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숫자는 3과 9이다. 그런데, 9는 결국 3으로 기인한 즉, 3의 3배수가 아닌가?
동파궁 공연도중 등장하는 동파경
동양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북방 여러 민족의 공통된 문화중 하나로 ‘3’이라는 숫자를 말한다.
3은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는 기본 수라고 하며, 3이 또다른 3으로 분화되어 만들어지는 숫자 9는 이러한 변화의 완성수가 되며, 9를 9만큼 곱한 81은 우주적 완성수가 된다고 한다.
우실하 교수는 이러한 ‘3수분화의 세계관’은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등의 동북아시아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요즘 고구려를 다룬 드라마의 열풍으로 인기를 끌었던 문양인 삼족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 동북아시아의 상징체계에 대해 세미나를 진행하던 출판인들 모임의 한 친구에게 듣기에는 이런 ‘3’이라는 숫자의 기본 관념은 몽골 북쪽의 시베리아 지방에도 확연히 존재한다고 들었다. 우실하 교수의 말처럼 북방 민족들의 시원(始原)인 요하 지방에서 처음 시작되어 동북 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어 나갔음직하다.
그런데, 우실하 교수는 티벳지역에도 삼족오가 전파되긴 하였는데 그쪽 지역에서는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고, 문양이 새겨진 단순 교역품 정도인것 같다며 좀 더 자료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책(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소나무, 2007)에 쓰고 있다.
이 곳 리장은 중국이 티벳을 강제합병하기 이전에는 거의 티벳문화권이라고 해도 될만큼 티벳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었던 국경지역이자 티벳으로 가는 차마고도의 중심 역참 지역이었다. 우실하 교수의 주장처럼 북방 샤머니즘에서 시작된 3수 분화의 세계관이 북방과 티벳지역으로 전파된 후 남하하여 나시족의 창세신화에 반영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동파경에 나오는 창세신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는 인류의 시조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셋 두게 되었는데, 이들이 말을 못하기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 말을 하게 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티벳 장족의 말을 하고, 둘째 아들은 나시족의 말을 하고, 막내는 백족의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시족이 북방 티벳 지역으로부터 도래한 민족임을 나타낼 수도 있으므로 더욱 위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픈 대목이다.
더구나 일본학자들의 연구 결과 윈난 지역이 동아시아 도작문화(벼농사문화)의 원발생지라는 사실이 어느정도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중국의 변방 끝자락인 이 지역이 우리와도 무엇인가 연결고리가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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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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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작가님 덕분에 운남을 여행하였던 사람입니다. 조금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운남을 더욱 깊게 느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가 가슴깊게 다가옵니다. 사진보다 더욱 아름다왔던 운남의 자연과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