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 / 여행작가, 국내외 여행기획자

리장의 나시족과 그 문화 (1)

리장 역사의 수천년 증인 - 강인한 나시족


중국 정부에서 정한 리장의 정식 명칭은 리장 나시족(納西族) 자치현(自治縣)’ 이다.

앞의 꼭지들에서 이야기했던 소수민족들의 가장 큰 자치 구역은 한국의 몇배에서 몇십배만한 크기의 자치구()이고, 그 다음은 한국의 도 정도의 크기에 비견되는 자치주()이며, 그 다음이 한국의 시•군 정도에 비견되는(물론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넓이로 따지자면 우리의 시군보다 훨씬 넓다) 자치현()이다.

 

리장은 바로 윈난성 25개 소수민족들 중의 하나인 나시족들의 자치현인 것이다. 나시족들의 자치현이라고 해서 나시족들만 살지는 않는다.

리수족, 이족, 바이족, 티벳장족, 푸미족 같은 소수민족들도 많이 살고 있으며 요즘은 관광이 활성화되어 한족이 무척 많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아직까지 명칭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행정기구상으로도 나시족들의 영역이며, 그것은 13세기 몽골족의 침략으로 중앙정부에 예속되기까지 끊임없이 한족을 포함한 이민족들과 싸워온 나시족 투쟁의 역사 그 연장선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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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쿠빌라이의 남방원정으로 중앙정부에 정복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에서는 윈난까지의 먼 거리와 통치력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리장의 대표 가문인 목씨 가문에 통치권한을 위임한 대리통치 형식으로 다스리게 된다.

중앙정부에 대항하지 말라는 조건을 건 최소한의 참견이고, 자치권을 준 것이다. 그 자치권은 실제 원나라를 거쳐 명나라, 청나라에까지 이어져 청이 멸망하던 근대에까지 목씨 가문의 자치적인 통치가 이어졌다.

리장 고성에는 근대에까지 500여년에 걸쳐 리장과 인근 지역을 통치해온 목씨 가문의 통치관청인 무푸(목부木府)가 있다. 왕궁에 버금가는 거대한 규모였으므로 고성내의 작은 집들과 달리 1996년 대지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어, 고증을 받아 재건한 건물이기에 그 당당하고 고풍스러웠을 옛 건물을 못 보는게 안타깝긴 하지만, 리장과 나시족의 항쟁의 역사를 생각해볼겸 들러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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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족의 재미있는 그림문자 동파문


리장에 가면 이상한 그림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나 고성 지역에 들어가면 그 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있는 장식품이나 생활용품들, 간판 등이 눈에 계속 띈다.

무엇일까?

 

이것은 동파문(東巴文)이라 불리는 나시족의 고유 문자인데, 그림이라는 것에서 눈치챘겠지만 상형문자의 일종이다. 창제된지 1천여년이나 되는 동파문은 실제 민중들의 생활에 활발히 쓰인것은 아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고로 최상위 지식인계층이 동파라 불리우는 제사장들이었는데 이들이 읽는 동파경이라는 경전과 각종 제례에 사용되던 문자가 바로 동파문이다.

 

현재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학자들이 동파문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그림 수백개가 아닌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최고의 지식인 동파가 아니면 그 완전한 해석이 힘든 경전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어 사유의 체계가 깊은, 지구상에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상형문자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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