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호남의 지역주의 이데올로기 담론 구조에 대한 치열한 비판서
- Posted at 2009/11/06 21:15
- Filed under 책
지지기반이 지역적으로 편중된 한국 정당체제에서 유독 호남이 핵심 기반인 정당만 지역당으로 비난받는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노당 모두 지역당인데 민주당만 지역당으로 비난 받는다. 이런저런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된다. 보수 진영의 일부에서는 호남빨갱이로 딱지붙이고, 개혁 또는 진보를 자임하는 쪽의 일부에서는 ‘호남 난닝구’라며 구태세력으로 몰아세운다.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할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은 영남쪽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정치적으로는 호남쪽이 풀어야 한다”는 황당한 궤변도 나왔다. ‘진보논객’이라는 진중권 얘기다. 그래도 통한다. 지역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반호남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다. “죽어라고 한나라당만 찍어온 (영남) 대중은 어떻게 하시렵니까”라며 신당 창당론을 설파했던 2003년 5월 유시민의 주장도 마찬가지 전제였다. 2003년의 열린우리당 창당 논리가 그것이었다. 2년 뒤 열린우리당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죽어라고 한나라당만 찍어 온 대중에 대한 애정이 발휘됐는지 이제 ‘대연정’을 외쳤다.
[만들어진 현실], 이 책의 부제는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이다. 한국사회 지역주의를 둘러싼 문제는 모든 것을 지역주의 탓으로 돌리는 지역주의 환원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24-27쪽).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 삼으며 문제의 핵심은 은폐하거나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저자 박상훈은 반호남주의로 이데올로기화된 지배담론을 분석한다(특히 60-93쪽).
그는 “권위주의의 재생산이든 기득권의 방어든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는데 반호남주의의 효과를 필요로 하는 체제와 세력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하며(60쪽), 그 담론의 형성과정을 정리한다. 1971년 이래의 정치과정에서 지역주의가 동원되는 과정, 보수·진보가 동맹해 외쳤던 ‘3김청산론’이 만들어 낸 반호남주의 효과, 주류언론의 담론구조 등을 자료와 함께 분석한다. 박상훈은 보수 주류언론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한겨레」 등 이른바 진보언론도 지역주의 망국론이나 양비론적 태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사회 현상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분석한다는 학자들도 지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학자로서 저자는 이 부분에서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가 지배했다며, 지역주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당과 후보에 따라 표가 지역적으로 편중된 것을 두고 지역주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투표결과에서 지역적 편향이 강할수록 마치 지역주의가 강한 것으로 환원된다. 지역적 편중 현상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무관하게 지역주의 극복을 말하는 양비론이 학계에서도 주류를 이뤘다.
푸코가 말하는 「지식-권력」 현상이 지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 지역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그냥 지역주의 양비론으로 순응하고 만다. 이구동성으로 지역주의 망국론을 외치지만 현실은 그대로인 역설은 지속된다.
박상훈은 단지 지역적으로 표가 집중된 것만을 가지고 지역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한 지역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지역주의로 보고 있는데(226쪽), “한국의 지역주의는 자기 지역에 대한 긍정성이나 귀속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배타적 거리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203쪽). 지역감정에 가까운 개념화이다. 사실 우리나라 지역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이 지역감정, 특히 배타적, 차별적 지역감정이다. 각 지역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을 싸잡아 특정 지역에 대한 배타적 지역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히 타당하지 않다.
선거를 전후해서 유권자들의 후보자 선택 기준에 대한 여론조사를 자주한다. 후보자 판단 기준의 우선 순위를 보면 대개 정책, 후보자 능력과 도덕성(인물), 정당 순이고, 뒤쪽에 출신 지역이 나온다. 그런데도 매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가 이번 선거를 압도했다는 보도와 전문가의 분석이 물결을 이룬다. 지역적으로 편향된 결과를 곧 지역주의로 환원시켜 해석하기 때문이다. 정책, 후보자, 정당 등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지역구도로 나타났는데, 이를 지역주의라 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훈이 비판하는 「만들어진 현실」의 하나이다.
저자는 한국의 지역정당 체제가 지역주의(지역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배타적 지역감정)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물론 이런 지역주의 요소가 전혀 작용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정책과 이념, 후보자, 정당 등에 대한 태도에 지역주의적 요소가 상호작용했을 것이다. 박상훈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태도 등의 차이가 지역적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지역균열을 이념대결이나 계급균열의 정당정치로 대체하는 것이 마치 정상적인 대의정치 모형인 것처럼 말해 왔다. 이는 경험적, 논리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다. 정치균열의 어떤 당위적 모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균열이든, 계급균열이든 정치균열은 그 사회의 조건을 반영하면서 만들어진 현실적인 결과이다. 또 한국 지역균열의 정당체제는 이념적, 정책적 차이를 매우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지역균열은 계급균열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미국을 비롯해 36개 주요 국가들을 비교·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세기 말 이래 선거에서 계급투표 양상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로 나타났다. 지역균열은 지역간 불평등 구조를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균열의 선거결과는 계급투표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2차대전 직후까지 유럽 국가들에서 계급투표 양상이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가장 자주 쓰이는 계급투표 지수인 알포드지수(Alford Index/좌파 정당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지지율과 중간층 이상의 지지율의 차이)가 50내외에 이른 나라들이 많았다. 그러나 60년대에 접어들면서 계속 하락해 최근에는 10미만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25정도로 발표됐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사실에 대한 점검도 없이 이념정당, 계급정당을 말하면서 유럽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이념이든, 계급이든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민주정치는 어려워진다. 지역균열 구도의 문제는 극단적 대립과 분열의 악순환 구조에 있었다. 지역균열 정당체제의 문제가 그것이었다. 제도 개혁을 통해서든 새로운 정치리더십을 통해서든 민주적 공존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민주적 공존을 위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차별의 해소와 차이의 공존이다.
대부분의 사회균열이 그렇지만 지역균열에도 차별과 차이의 요소가 혼재돼 있다. 그런데 차별의 해소도 공존을 위한 전략도 모색하지 않은 채, 그냥 지역주의 극복을 주장하는 망국론이나 양비론이 우리의 지역주의 담론을 지배했다. 박상훈은 지역주의가 안고 있는 차별 해소 과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고 민주적 가치에 상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 모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지역주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반호남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는 호남출신 차별에 있다”(228쪽)고 한다.
그러나 박상훈은 “민주정부 10년은 호남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으로서 반호남 지역주의는 한국정치가 해결해야 할 중심 문제의 지위는 벗어났다”고 본다. 호남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제 사회적 약자나 도전세력에게는 가혹한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적 차별의 구조 일반으로 확장해야 된다는 것이다. “호남차별에 대한 인식은 실업자와 비정규직, 조선족과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 최저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할 것”(244쪽)이라는 그의 주장에 절대 공감한다. 최근 농촌지역 신혼 가족의 1/4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바, 지역적 공간의 차별 구조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균열의 정당체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자주 제기되는 것이 진보정당 강화론이다. 차별의 해소에 주목하는 진보적 정책은 강화돼야 한다. 저자 박상훈도 이런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 정당체제의 문제는 보수편향보다 오히려 극단화된 대립에 있다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된다. 경쟁 세력끼리 대립이 격화되면서 때로는 이념적 대립이 과장되기도 한다. 우리의 정치권력 투쟁 양식이 승자독식의 흑백대결 구조이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은 보수편향을 말하지만,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세력은 지난 민주화 정권 10년을 두고 오히려 극단화된 좌파의 지배 시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주장 자체가 극단화된 대립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좌·우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보편적 신뢰를 받는 통합세력의 부재가 한국 정치의 혼돈 상태를 만들고 있다.
지역균열의 정당체제는 지역별로 독과점의 정당체제가 됐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를 토대로 한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는 거대세력의 흑백싸움을 이끌어, 다양한 정치세력, 신진 군소세력의 성장을 어렵게 했다. 역시 문제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독과점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독과점 체제를 이끌고 있는 정부권력 구조와 제도의 개선이 과제이다.
박상훈 박사의 [만들어진 현실]이 제기하는 지역주의의 이데올로기성은 일찍이 그의 스승 최장집 교수가 역설한 바 있다. 지역주의의 이데올로기성에 대한 지적과 양비론이 혼재됐던 스승의 연구보다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청출어람이다.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해석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책 내용의 초점은 아니다. 한국정치를 지역주의로 치환시켜 볼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한국 정치의 여러 틀 속에서 객관화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249쪽)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렇다, 차별의 해소와 민주적 공존이라는 민주화 이후 한국민주주의의 과제 속에서 지역주의에 대한 진단도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