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여사’ 남편으로 사는 법
- Posted at 2009/10/26 07:59
- Filed under 살아가는 이야기
이왕재 |중소기업시대포럼 사무처장
아내 윤여진은 결혼하기 전부터 ‘윤 여사’로 불렸다. 아마 늘 당당하고 강단 있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혼한 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으로서의 아내는 더욱 ‘여사’스러워 졌다. 나는 가정의 평화와 나의 생존을 위해서 ‘여사’의 남편으로 사는 법을 익혀야 했다.
‘여사’의 남편은 상대를 제압하려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갈등의 씨앗이다. 동시에 제압당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아침
아침밥은 언감생심. 나에게 아침을 차리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는 심정으로 아침을 맞는다. 나의 임무는 휴대폰 챙기러 한 번, 가방 챙기러 또 한 번, 화장품 챙기러 다시 또 한 번, 이렇게 자꾸만 들락날락거리며 바쁜 출근 시간을 허비하는 아내를 빨리 집밖으로 몰아내는 일이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항상 아내 뒤편에 서서 묵묵히 ‘소몰이’를 한다.
점심
오전에 한 통의 전화도 없다면 그것은 아내가 무척 바쁘다는 뜻이다. 반대로 한 통의 전화도 내가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바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점심 식사 후에는 꼭 전화를 해야 한다. 점심시간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목소리를 듣고 들려주는 ‘문안 인사’의 시간이다.
오후
아내의 큰 관심은 나의 몸매이다. 많이 먹지 말라고 노래 부르는 ‘윤 여사’에게 나의 점심과 간식 식단을 점검하는 일은 중요한 일과이다. 오후 느지막하게 어김없이 아내는 물어온다. 이때 당황해서는 안 된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이다.
나는 아내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먼저 묻는다. 카레라이스를 반만 먹었다고 답한다. 점심 먹기 전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또 물어본다. 그러면 호도 파이 반쪽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라고 또 캐물으면 “단팥빵 하나”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쯤하면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아내는 묻지 못하게 된다.
저녁
퇴근이 늦는 아내와 나는 밤 10시나 11시에 광화문에서 만나 함께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절반정도다.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쪽이 먼저 퇴근한 쪽에 전화를 걸어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언론인권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 중요한 사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이야기하고, 집안 대소사를 놓고 의견을 나눈다. 나는 주로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리 피곤하고 바빠도 상호 일치하는 이 시간은 내야 한다.
자정
약속을 어기고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가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떡볶이와 순대’를 추궁할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날이면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언론인권회보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