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대한 두려움
- Posted at 2009/10/23 14:46
- Filed under 시사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십 수 년을 매달려온 ‘친일인명사전’이 곧 세상에 나온다. 전 3권, 수록인물 4300 여명, 3000쪽에 달하는 규모만으로도 해방 후 현대사연구에 큰 획을 긋는 저작물이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불과 1년 앞두고 있고,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좌초한지 60년 만에, 또한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이 타계한지 만 20년이 되는 해에 대업이 일단락되는 것이다.
고스란히 남는다
친일문제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다. 매일신보에는 그 때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청년들을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내몰았던 사람들의 언행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00년 세월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록 앞에서는 어떤 변명이나 궤변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방 후 그들의 궤변은 멈추지 않았다.
이광수 李光洙(香山光郞, 1892~1950). 그는 “황민화가 될수록 조선 민족에게는 행복이 오는 것”이라며 “신체의 어느 부분을 바늘 끝으로 찔러도 일본의 피가 흐르는 일본인이 되지 아니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강변했다.
1948년 12월 이광수는 ‘나의 고백’을 통해 ‘민족의식에 싹트던 때’부터 일제말기까지 자기의 행위가 ‘애국자로서의 명예를 희생’하더라도 ‘민족보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변명했다.
서정주(達成靜雄, 1915~2000). 친일적 글쓰기에 가담한 행적을 반성하는 글을 남겼지만 문인으로서의 명성에 또 한 번 먹칠을 했다. 그는 세간에서 자신을 ‘친일파(親日派)’ 로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만 일본의 ‘욱일승천지세’ 밑에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로 체념하면서 살아간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편파언론 역사의 창고에 쌓인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뼈저린 반성도 있다.
이항녕 李恒寧(延原光太郞, 1915~2008). 일제하에서 군수를 지냈다. 그는 수차례 친일행적을 반성하는 글을 남겼으며, 1991년 7월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50년 전 하동군수로 재직하면서 공출미를 탈취하고, 일제에 협력을 강요했다"며 사과했다.
요즘 언론은 자신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해 또는 정파성에 따라서 편파보도나 왜곡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기록일지라도 하나하나 역사의 창고에 쌓이고, 훗날 현대사 연구에 유력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경외심, 기록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는 언론인의 필수덕목이다. 요즘 이런 언론인을 찾아보기 참으로 어렵다. (언론인권회보 38호)
-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