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난 풍속도

안병찬 | (사)언론인권센터 이사장

후배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 강의를 수강하던 중에 언론사 입사시험에 응모해서 기자가 되고 언론인권센터 회원으로 가입한 젊은이다. 

초년 기자와의 대화

그는 언론사의 전통적인 관행대로 사회부 사건팀에 배속되어 일선 경찰서를 뛰는 고된 견습기간을 끝냈다.

나는 일선경찰서를 출입하는 요즘 기자들의 풍속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화제를 그쪽으로 돌렸다. 2009년의 경찰기자인 김정남은 1960년대 초중반기의 경찰기자인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험난한 기초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가 매우 잘 통했다.

우선 경찰기자의 용어가 그대로다. 지금도 경찰출입기자는 경찰서를 돈다는 뜻으로 생긴 일본 이름 ‘사쓰마와리(察廻)’로 통한다.

여전히 말뚝근무를 ‘하리꼬미’라고 하고 서울지방경찰청(옛 서울특별시경찰국, 즉 시경)을 맡은 팀장을 ‘시경캡’이라고 부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울의 경찰서가 우리시절에는 12곳이었는데 31곳으로 늘어난 점이다. 우리 때는 경찰서 둘을 하나로 묶어 모두 6개 노선을 나누어 뛰었다. 지금은 9개 노선에 시경부캡도 두고 있다.  

여전한 ‘가슴앓이’

‘사쓰마와리’의 생활이 하도 고달픈 나머지 그 어감을 따서 ‘가슴앓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김정남 기자는 밤낮으로 경찰서를 중심으로 고난의 길을 뛰는 경찰기자 얘기를 했다. 그들은 새벽까지 경찰서를 누비다가 경찰서 기자실 등에서 한 숨 붙인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선임기자에게 현 위치를 보고하고 또 하루를 뛰는 ‘가슴앓이’ 생활을 한다.

나는 대학에 재직하던 1990년대 중반에도 한 후배 여기자를 불러서 경찰기자 취재의 낮과 밤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청바지를 입고 경찰서를 돌다가 새벽에 기자실에서 토끼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뛴다고 했었다. 집은 일주일에 한번 밖에 못 간다고 했다. 어떤 남성 동료는 기자실에서 자다가 원형탈모증에 감염되어 머리카락이 뭉텅 빠진 일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기자’에 언론인권의 날개를

이런 ‘가슴앓이’ 기자의 풍속은 왜 여태까지 변함없이 존속하는가.

경찰기자 취재과정은 언론사의 기초 직업훈련 과정으로 특효가 있다는 경험칙에 따라서 제도로 확고하게 정착한 것이다. 그 강도 높은 극기의 과정은 초임기자들에게 서정에서 깨어나 사실을 획득하는 방법을 현장에서 깨우치라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정확한 기사를 써내라”고 요구한다.

이 제도에 약점이 있다면 제한시간 안에 목표에 도달해야하는 작업 본질 때문에 자칫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론인권센터가 경찰기자 훈련과정에 들어가는 젊은 기자들에게 ‘언론인권’을 지키는 방법을 사전에 알려주는 역할을 맡게 되기를 바란다. (언론인권센터 회보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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