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야’ 진위 공방

김학웅 변호사 


세 가지 전제
 

먼저 세 가지를 짚고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한다. 

첫째, 언론에게 주어진 취재, 편집, 보도의 자유란 사실을 확인하고 공정한 논평을 할 의무와 정확히 비례하는 관계다. 따라서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편파적인 논평을 하고 이로 인하여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사실 확인 의무란 보도가 되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사전적(事前的)인 의무이고, 그 이행 여부는 언론이 보도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큼 상당한 주의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셋째, 기사와 칼럼이라는 형식상의 구분이 사실진술과 의견진술이라는 내용상의 구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무료 일간지에 십여 년의 경력을 가진 중견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가 2008년 7월 9일 이런 칼럼을 기고했다. 

“일산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사망했는데, 그 이유는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1교시가 끝나고 조퇴를 요청했으나 담임선생으로부터 꾀병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 3교시를 마치고 친구의 부축을 받아 양호실에 갔으나 양호실 문이 잠겨 있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급기야 4교시에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는데 양호교사와 체육교사 등이 응급처치를 할 줄 몰라 119가 오기까지 방치되어 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망했다.” 

얼토당토않은 질타 

칼럼의 내용대로라면 담임교사와 보건교사, 체육교사는 물론 교육 당국 역시 학생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고, 학생에게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사태에 대해 속수무책인 우리의 중등교육 현실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기사내용과 다르다. 사망한 학생은 조퇴를 요청한 적도 없고, 친구와 함께 보건실에 간 적도 없으며, 보건 교사는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며칠 전에 응급 처치 교육까지 받은 베테랑으로 응급처치기구를 준비해서 체육교사와 함께 응급처치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진실과 전혀 다른 엉뚱한 내용이 칼럼에 실리게 된 것일까?  

소송을 제기하자, 십여 년 기자 경력의 칼럼니스트와 언론사는 너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주장했다. “칼럼니스트의 아내가 운영하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으로부터 사망한 학생과 관련한 소문을 들었는데 아내를 믿는 만큼 그 내용을 신뢰하였고, 칼럼은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 사실 확인 없이 작성될 수 있다”라고. 

아!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부인 이야기이니 믿을 수 있다는데 근거를 두었다니 말이다. 칼럼이라도 허구가 아닌 이상 구체적 사실에 대한 의견을 펴야하고 따라서 사실 확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허구인 소설이나 드라마도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내용은 철저히 고증을 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자료 

칼럼이 게재된 이후 학교 측은 신문사와 칼럼니스트에게 칼럼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며 어떤 경로로 사실을 확인했는지를 물었다.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는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사실관계 자료를 써놓았지만 보내지는 않겠습니다”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자료를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응답하고 부랴부랴 자료를 만들었다. 한 술 더 떠서 “사건이 더 확대되기를 바라십니까. 다시 양호교사 등을 불러 확인해보기 바랍니다”하고 사실상 협박으로 들리는 말까지 했다.  

다행히 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 들여 피고들에게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을 명했다.

칼럼의 제목은 ‘금쪽같은 내 새끼야’였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아끼지 않으랴?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의 죽음 앞에 통곡하지 않으랴? 더구나 그 죽음이 어쩔 수 없는 돌연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 부모님의 가슴 속에 평생 남아 있을 회한과 절망은 어떨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그 펜이 잘못 휘둘러 질 때 칼보다 더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중견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와 언론사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자신의 주관적 편견을 진실이라고 생각한 그 칼럼니스트와 신문사는 사망한 학생의 담임교사와 보건교사, 체육교사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망한 학생의 부모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놓았다.  

현대 국가에서 언론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도 않고, 광장의 토론을 통해 선발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에 제4의 권력이라는 자리가 매겨지는 이유는 알권리를 통해 다원적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다른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기능적 권력분립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한 언론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사실 확인 의무에서 출발한다.(언론인권센터 회보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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