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 경희사이버대 교수

그것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달리기라도 하는 듯 한쪽 발을 뒤로 올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 1999년 외국의 한 쇼핑몰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저 'phoon'이라는 아무 뜻도 없는 단어만 제목으로 붙여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예상도 못한 일을 만들어 냈다. 세계 각지의 네티즌들이 똑같은 자세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피라미드나 피사의 사탑 등 유명 유적지를 배경으로 삼기도 하고, 레미콘 차 꼭대기나 지붕 위에 올라가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네티즌들은 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phoon'이라 명명하고 있었다. 이후 'phoons.com'이라는 사이트까지 만들어졌고, 수 천 장의 사진들이 이 사이트에 모여 들었다. 이 사이트에는 지금도 사진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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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 동영상 ‘스타워즈 키드’ 시리즈 역시 전 세계 네티즌들의 합작품이다. 2002년 캐나다의 한 소년이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 흉내를 내며 긴 막대기를 어설프게 휘두르는 동영상이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 별 볼일 없는 동영상에 네티즌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입혀지면서 재미있는 시리즈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년이 광선검을 휘두르며 총알을 막아내는 장면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영화 <매트릭스>의 악당 스미스 요원과 한판 결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식으로 벌써 수 백 개의 동영상 시리즈가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스타워즈 키드’는 새로운 사이버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이란 글로벌 네트워크가 세계 각지의 네티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를 창출한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네티즌 문화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글로벌 액티비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지난 200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부시의 재선으로 막을 내린 직후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전개된 ‘쏘리 에브리바디’(Sorry Everybody) 캠페인이 한 예이다.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제임스 제틀런이란 대학생이 웹 사이트(
www.sorryeverybody.com(새 창으로 열기))를 개설하고, 부시의 재선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전 지구촌 사람들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의 메모를 들고 찍은 자기 사진을 올린 것이 이 캠페인의 시작이었다. 이후 수 천 명의 미국인들이 이런 사진을 이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외신을 타고 널리 알려지자 다른 나라 네티즌들이 다시 미국 네티즌들에게 화답의 메시지를 전하는 웹 사이트들을 잇달아 개설했다. 이 과정에서 ‘쏘리 에브리바디’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지구촌 사람들의 캠페인으로 성장해 갔다.

네티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 사례도 있다. 2002년 미국의 시민단체 OCA(Organic Consumers Association)가 주도한 ‘글로벌 스타벅스 반대 주간’ 운동이 그것이다. OCA는 스타벅스 커피의 공정거래와 유전자 조작 원두의 사용 중지를 요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동시다발적 시위를 조직하였다. 그 결과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400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마침내 회사 경영진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네티즌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새로운 취재보도 방식을 선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의 금융노조가 “해외 선진국에서 은행 영업시간 단축이 확대되는 추세”라며, “국내 은행들도 이에 발맞춰 영업 마감 시간을 앞당길 것”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에 ‘한글로’라는 닉네임을 쓰는 블로거가 해외 거주 네티즌들에게 다른 나라의 은행 마감은 몇 시까지인지 알려달라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곧 세계 각국에 흩어져있는 한국의 블로거들이 그 나라의 은행 마감시간을 댓글로 알려주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세계 여러 나라의 은행 영업 시간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금융노조의 주장과 달리 선진국 중 우리나라보다 은행 영업시간이 짧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며, 미국,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은 고객 편의를 위해 아예 토요일에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이 문화에서 시사 현안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이 만들어 낸 글로벌 네트워크가 지구촌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손을 얹고 있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느닷없이 전 세계 네티즌들을 움직이는 시동 장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시사IN 제24호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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