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주의 복지와 국민건강보험
- Posted at 2009/02/24 11:35
- Filed under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 성 재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변호사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고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이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모두가 가난했던 절대빈곤의 시절에도, 고도성장의 시기에도 민초들의 아우성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아우성의 성격이 달라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시장만능주의에 포획되어 소위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하위 소득집단 10%의 소득 대비 상위 소득집단 10%의 소득 비율은 3.475배에서 5.421배로 확대되었다. 또한, 밥 못 먹는 보릿고개를 겪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겠으나, 절대빈곤율은 1996년 3.51%에서 2006년 상반기에 12.76%로 크게 늘어났으며, 중위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의미하는 상대빈곤율은 1996년 8.73%에서 2006년 상반기에 16.37%로 늘어났다. 우리 사회가 1997년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장만능주의 경제사회체제로 발전해왔다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시장만능주의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성장 전략은 양극화 성장이 아닌 사회 통합적 성장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시장만능주의를 버려야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시장만능주의가 세계 경제의 미래가 아님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세계 각국은 기존의 시장만능주의가 아닌, 은행의 국유화 등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여 국가의 역할과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종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여 왔던 미국과 영국이 시장만능주의의 교리를 스스로 깨는 정책들을 앞장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만능주의를 버려야
국가의 역할과 개입은 ‘국가와 국민’ 간의 상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건강한 상호관계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는 등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만큼, 국가도 국민의 자유와 사회권을 보장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과거 역사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국가는 특정세력만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는 폭력체계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가는 주로 어떤 영역에서 역할과 개입을 강화할 것인가? 기본적 민생과 사회권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만큼은 민생민주, 곧 평등의 가치가 우선이다. 이것의 한 가운데 보편주의가 놓여있다.
보편주의는 잔여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사회서비스를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 모두에게 형평하게 제공한다는 의미다. 유럽 선진국들의 사회정책에서는 보편주의의 원리가 비교적 잘 구현되고 있으며, 북유럽에서 특히 그러하다. 미국은 반대로 근로능력이 없고 절대빈곤에 놓여있는 일부 국민들만을 선별하여 잔여적으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줄곧 잔여주의 복지를 목표로 추구해 왔으나,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시작으로 보편주의의 틀을 일부 복지제도에서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급속하게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사회로 발전해 가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안전망 개념의 보편주의 복지가 크게 요구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김대중 정부가 의료보험제도의 완전 통합과 4대 사회보험을 보편적으로 확립하여 오늘 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후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소위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민건강보험 등의 보편주의 복지는 확대되었고, 보육과 장애인 서비스 등의 각종 사회서비스도 조금씩 확충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언론 등에 보도된 ‘이명박 정부 1년 평가’에서 우리나라 복지가 크게 퇴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는 시장만능주의에만 매몰되어 국가의 역할과 적극적 개입을 등한시한 결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 지난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보편주의 복지다. 유럽선진국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가 턱없이 부족하므로 보편주의 사회정책을 통해 국가의 역할과 개입을 꾸준히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 통합적 성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제대로 된 보편주의 복지제도에 속한다.
온 국민이 법적으로 가입되어 있고, 의료 혜택은 필요에 따라 동일하게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형식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내용에 들어가 보면 보장성 수준이 유럽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으므로 의료이용 시점에서 서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실질적 보편주의는 달성하고 있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필자가 지난 시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근무하였던 3년 내내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일에 목을 매다시피 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회정책이 추구해야 할 길, 궁극적으로는 사회 통합적 성장을 위해서는 꼭 달성해야 할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유럽선진국들의 의료보장성 수준은 대개 85%를 상회하는데,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64% 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해서는 20% 포인트나 부족하다. 갈 길이 먼 셈이다. 그런데 비록 부족하긴 하지만 현 수준의 보장성에 도달하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는 연간 의료비 상승률 10-15%를 크게 상회하는 건강보험료 인상을 단행하였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달성한 것인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의 공든 탑,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으로 달성한 이 성과를 무너뜨리고 있다. 집권하자마자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였고, 2009년도 건강보험료 인상을 포기함으로써 온간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유지해왔던 국민건강보험 재정 확충 노선을 사실상 폐기한 셈이다.
얼마 전 국회 예산정책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현 정부의 부자감세 조치로 5년 간 총 96조원이 감세된다고 한다. 내수경제와 사회 통합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이러한 조치 대신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을 위해 정부 재정을 더 많이 투입하고,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확충에 획기적 수준의 재정 투입을 결정할 순 없을까?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카테고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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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Universal이란 말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보편적 보편주의로 나아가야 하는게 선진국 유럽의 공통된 희망 아니겠나 싶군요.
물질만능과 시장만능주의에 좌절하는 이웃들이 많아보여요.
간절한 소망으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 나약한 나를 몇번이고 발견하게 되는거라 슬프고요.-
감사합니다. 복지국가는 이제 시작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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