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차 향기


스미는 지리산 화개골, 다향(茶香) 마을


먼 얘기다. 지리산 화개골에 불이 났다.

손발 짓무르게 찻잎 따던 차밭에 천 년 전 이땅의 노비들이 불을 질렀다. 어린 찻잎이 타고, 지리산이 타고, 차 공출(供出)에 등골이 휜 노비들 가슴도 불탔다. 그리하여 차밭은 스러지고 재만 남았다. 화개의 차밭은 잊혀진 옛 이야기가 되어 세월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전설로만 떠돌았다.


섬진강의 무심한 강물처럼 스쳐 지나간 세월 속에, 꽃은 피고 졌다. 숯 검둥이 차밭, 용케도 몸을 건진 차나무에서 여린 새순 돋아났다. 지리산 너른 품에서 피어난 골안개가 찻잎을 적시고, 바다로 나갔던 은어 떼 섬진강에 돌아오는 봄, 촉촉한 봄비 내리는 곡우(穀雨) 쯤에 새초롬 새순을 틔웠다.


그 여린 찻잎들은 가마솥에서 덖어지고 무수한 사람의 손길 받으며 속으로 속으로 향기를 품는다.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찻잎을 따야, 삼백 도가 넘는 고열 속에서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차를 덖어야, 무릎이 까질 정도로 멍석에 비벼야, 엉덩이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가마솥을 싸고 앉아 맛내기를 해야 차가 된다.


그 손길 다 받아 먹고, 그 정성 다 받아 먹고 화개 차는 우리 곁에 온다.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 같은, ‘햇차 한 잔에 한 권의 경책(警責)’을 따르는 노승(老僧)의 향기처럼, 정수리에 아침 이슬 한 방울 슬쩍 떨구어 지친 영혼을 화들짝 깨운다.


차 시배지로 간택받은 땅 화개


화개에서 쌍계사로 달리는 4월의 길은 싱그러운 녹음 그 자체다. 길은 호젓하고 산 빛은 초록 물결로 풍성하다. 길옆의 논밭에는 겨울을 지낸 보리들이 성큼 자란 키를 바람에 날리며 물결친다.


꽃 피는 산골 화개. 지리산 깊고 깊은 골짜기이면서도 언제나 햇살이 머무는 곳. 해탈한 선승들이 유유자적 주고받던 선문답처럼 일견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차 맛에 취하는 이들이 늘면서 화개의 봄날은 차 향기로 다시 시작한다. 길가에 열 지어 반기는 무슨무슨 찻집, 다원(茶園)들이 차로 꽃 피는 화개 산골의 오늘을 말한다.


화개골에 차나무가 심어진 역사는 <삼국사기>에 전한다. ‘신라 흥덕왕 3년(823년) 김대렴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후 왕명으로 지리산에 차씨를 심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쨌건 차나무 시배지가 그 많은 땅 중에서 지리산으로 간택된 것은 왜 일까?


그것은 화개골의 기후 때문이다.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들어 내는 기후는 차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적당하다. 낮 동안 뜨거워진 지표는 큰 산인 지리산에서 쏟아 내리는 냉기로 저녁 나절이면 싸늘히 식어 밤과 낮의 일교차를 크게 하고, 섬진강의 큰 물에서 피어난 골안개가 아침이면 골짜기를 싸고 돌아 자연히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운다는 화개의 따뜻한 날씨 덕에 동해(凍害)를 입을 염려도 없다. 토심은 깊고 자갈이 적당히 섞여 있어 차나무가 자라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화개골은 갖추고 있다.


화개에는 옛날부터 차를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다소(茶所)가 있었다. 각 지방에서 나는 특산품을 생산하던 곳인 ‘소(所)’는 통일 신라 때는 천민들이 그 일을 맡아 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까지 존속되었다.


차는 신라 시대부터 중국에 바치는 조공의 중요한 물품이기도 했거니와 귀족들의 생일, 제사, 결혼 등에 귀중한 예물로 쓰였다. 그 차를 만들기 위해 노인은 물론 어린 아이들까지 징발하여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혹독한 고통을 화개 사람들은 치러야 했다.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심지어 차밭에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신라, 고려 시대를 거쳐 널리 유행하던 차는 조선 시대들어 불교가 쇠락하고 유교가 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절간의 스님들을 통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차는 조선 말기 ‘다성(茶聖)’ 이라 불리던 초의 선사가 크게 부흥시켰다. <동다송(東茶頌)>이란 책을 지어 차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밝은 달 촛불 삼고 또한 벗을 삼아

흰 구름으로 자리 펴고 또 병풍 두르니

청한함은 뼈에 저리고 심간을 깨워 주네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 모시고

나 홀로 차 따라 마시니 이것이

승(勝)이로다


잊혀져 가던 화개차에 대해서 관심이 증폭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커피와 음료수, 조미료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자연에 가깝고 몸에 이로운 우리 것을 찾기 시작했고 덩달아 차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더욱이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획일적인 맛의 일본식 제품보다 일일이 각 가정에서 전통적인 수공업으로 만들어 내는 화개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화개차 맛은 그만큼 차 맛의 취향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화개차를 선호하게 된 이유에는 뭐니뭐니 해도 지리산 기슭의 야생차라는 것과 차를 만드는 이곳 사람들의 고된 정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화개차의 오묘한 맛에 취한 이들은 봄이 무르익어 곡우(穀雨, 4월 20일 또는 21일 전·후의 새순을 따서 만든 차를 최고로 친다)가 다가오면 햇차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차 덖는 마을


화개장터가 있는 화개골 초입으로부터 40리를 따라 들어간다. 계곡의 양쪽 산비탈에 늘어선 차나무 밭에는 찻잎을 따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러 점으로 보인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비탈에 차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4월 중순으로 찾아가면 알 수 있다. 마치 모이를 쪼는 닭의 주둥이처럼 여린 새순만을 톡톡 따내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화개골 마을들의 대낮은 정적만 맴돈다. 우전(雨前, 곡우 전에 따서 만든 차. 첫물이라고도 한다)과 세작(곡우로부터 일 주일 가량 동안에 딴것)이 차의 맛과 가격에서 월등하므로 참새 혓바닥 만한 그 새순을 따내기 위해 모두들 골짜기 차밭에 나가 찻잎 따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새순은 하루 이틀 상관으로 시간이 지나면 찻잎이 그만큼 억새지기 때문에 그날그날 허리 펼 틈 없이 따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개 주민들의 일손으로도 모자라 구례 지역에서 일손을 구해 올 정도다.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이 되면 골짜기 속에 온종일 파묻혀 찻잎을 따던 사람들이 하나 둘 허리를 펴고 돌아온다. 한 보따리씩 둘러메고 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양이 얼마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칠순 넘긴 노인부터 꼬마들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찻잎 보따리를 들고 마을로 돌아오는 모습은 옛날 차 공출에 동원되었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어디 그 때와 같으랴 지금은 자연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살림살이’인 것을. 누구는 많이 따고 누구는 재미 못 봤다는 둥 차밭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한바탕 들썩하던 마을에 밤이 오면 몇몇 집은 밤새 불이 켜져 있다. 사람들이 따온 찻잎을 모아 바로 덖어 차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찻잎 딸 때의 피로마저 누일 수 없는 처지다.


“차를 덖는 4, 5월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낮으론 찻잎 따랴, 저녁부터 밤으론 차를 덖고, 아침으론 차 맛내기 작업을 합니다. 차를 만드는데 제일 중요한 맛내기 작업은 보통 3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때는 차가 차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도 닦는 기분으로 쉼 없이 팔을 놀릴 뿐입니다.”


8년째 차를 만들고 있는 이호복씨의 말이다. 그이의 차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수고스럽기 그지없는 차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지금까지 무심코 마셔온 차에 대한 생각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다.


하루 종일 따온 찻잎을 일일이 선별하고 350도 정도의 고온인 가마솥에 손 데어 가며 덖기를 마치면 어깨 힘 쪽 빠질 정도로 멍석에 비벼서 덖은 찻잎을 돌돌 말리게 한다. 이것을 다시 일일이 털어 수분을 제거하면서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낱개로 떨어질 때까지 수없이 반복해서 털어 내야 한다.


털기를 마친 찻잎은 건조실로 옮겨지는데 노하우가 담긴 적당한 온도로 5시간에서 6시간 건조시켜 가며 잡티를 비롯한 고르기 작업을 한번 더 한다. 건조를 마친 찻잎은 얼추 완성된 차의 모양을 띠지만 끝으로 맛내기 작업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맛내기 작업은 차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므로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가마솥에서 작업을 하되 ‘덖기’를 할 때처럼 고온이 아닌, 역시 노하우가 담긴 은은한 온도로 3시간 내내 손놀림에 정신을 집중하며 진땀을 흘려야 한다.


건조 작업에서 부풀어 있던 차가 맛내기 과정을 거치면서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침내 말라 비틀어진 그 찻잎 속으로 그윽한 향과 맛을 품은 차가 완성되면 어느새 그이의 몸도 완성된 찻잎만큼 훌쩍 말라 보인다. 진을 다 뺀 것이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시는 것처럼 흔한 일이라는 뜻인데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차를 즐기는 경향이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차 문화가 일본에서 역수입되면서 까탈스런 형식에 얽매이게 된 연유가 크다 할 수 있다. 형식을 버리면 차 마시기가 즐겁다. 더욱이 만드는 사람이 쏟은, 수많은 정성의 손길을 받아먹은 화개 야생차라면 단지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넘어, 차를 만든 사람의 정신까지도 마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겨울에도 칡꽃이 핀다 해서 화개(花開)골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에서 유난히 사람을 많이 품어 기르는 화개골, 그 계곡의 험준한 산비탈에 차나무가 있고, 그 계곡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봄이면 차 덖느라 하루 해가 짧다.

KBS건강365  http://life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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