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 표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레디앙 기획위원  


 이제 얼마 후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 다가온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07년 겨울의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던졌다. 2007년 대선 결과에서, 도대체 이해 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었다. 최종 개표 결과, 정동영 후보는 겨우 26%를 득표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명박 후보는 48%를 득표하였고, 그밖에 이회창 15%, 문국현 5.8%, 권영길 후보는 3%를 얻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대개 1,2위의 격차가 5% 이내로 매우 근소한 차이를 보여 왔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선거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49대 51의 게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집권당 후보의 이렇듯 처절한 완패는 말 그대로 강력한 정치적 충격이었다. 오죽했으면 나는 이를 ‘07년의 충격’이라고 부른다.


 정동영은 특별한 카리스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도자로서 특별히 중대한 결함이 있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는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다. 그런데 왜? 정동영은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처절한 완패를 당했던 것일까? 정상적인 경우였다면, 그는 질 때 지더라도 49대 51의 게임을 만들고 져야했었다. 투표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히 수도권 30대의 이탈(=이명박 지지로의 이동)이 심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불과 5년 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층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던 것일까? 이것은 거대한 시대정신의 전환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이 통일부 장관 출신으로 민족과 통일 이슈를 주도해온 정동영을 압도적으로 누른 사건은 정동영의 대표 상품(=통일)이 이제 더 이상 이 시대의 주요한 욕망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외면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분당도 ‘07년 충격’의 산물이었다. 권영길, 노회찬, 그리고 심상정, 이렇게 세 후보의 당내 각축전은 내부의 보이지 않는 분열을 낳았는데, 여기서 당내 민족주의 진영의 지지를 받은 권영길 후보가 ‘코리아 연방 공화국’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1등을 차지해 결국 세 번째 대선 후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노당은 지난 대선에서 5년 전 보다 못한 3% 득표라는 저조한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거대한 당내 충격이 되었고, 결국 분당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결과적으로 ‘07년 충격’의 핵심은 '민족', '통일' 이라는 87년 이래의 주요한 시대정신이 "경제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슬로건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87년 체제의 해체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87년 체제는 강력한 군사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부터 자유주의, 범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오만가지 사회세력들이 단일 대오로 뭉쳐 반기를 들었던 저항체제였다.


 지금 현재 우리사회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 공히 과거 87년 체제를 이끌었던 민주화 운동권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진보파의 입장에서 보면 변절자들이 많은 것이겠지만, 어찌 보면 애초부터 ‘운동 유전자’를 달리하는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인 신념과 노선들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에 단일대오로 집결했었기 때문에 발생한 자연스런 분화과정이기도 했다.

20년 전에 수립된 민주화 운동 체제는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져 각종 기관과 조직을 만들어낸 일종의 줄기세포였던 셈이다. 결국 이 87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민주노동당은 분열되었고, 동시에 자주와 평등이라는 정파연합적인 구호도 붕괴되었다. 그리고 ‘07년 충격’의 결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통합되었고,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으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특정한 선거 결과를 통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정치 충격을 유치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정치 충격의 결과 시대정신은 교체되고, 각 정치세력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확인된 민중의 의지는 새로운 시대적 좌표가 된다. ‘07년의 충격’은 우리에게 과거의 낡은 가치를 빨리 청산하고 민생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작성하여 실천하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과 곧이어 있었던 2008년 총선 결과는 우리에게 마치 역사가 거꾸로 가는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반역사적 현상이 나타난 것은 대중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실에 존재하는 정치세력 중에 이렇게 새로이 탄생한 시대정신을 담아줄 그릇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인해, 대중의 의지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낡은 정신은 물러갔으나 이를 교체해줄 새로운 그릇, 즉 새로운 정치세력이 부재하였기 때문에 한국 민중은 여전히 호남에서는 무슨 당을 찍고 영남에서는 또 무슨 당을 찍어야 하는 구조적인 불행에 놓여있는 것이다.


 87년 체제는 낡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를 적극적으로 교체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07년의 충격’을 받아 안을 새로운 시대정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주지하듯이 범 진보개혁세력의 경제사회적 대안은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할 새로운 시대정신임을 우리는 1년 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통해 나타난 ‘대중의 의지’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정치 전략적 함의를 이런 측면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라져야할 시대정신을 제 때 교체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을 머릿속에 자리 잡은 낡은 구도에 사로잡혀 살아야 한다. 87년 당시의 중심적 시대가치는 이제 새로운 시대가치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는 현 시기에 우리나라가 당면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동시에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시대가치는 ‘역동적 복지국가’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유효한 정치 전략은 ‘복지국가 정치연합’이다. 대중의 욕망 속에 잠재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해야 할 의무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카테고리 기술/공학
지은이 이상이 (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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