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인권 변호인의 낮과 밤"

 배영철| 변호사


변호사들은 해마다 일정한 시간을 공익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인천지방변호사회 소속이기 때문에 주로 인천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를 해서 그 의무시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외국인전담재판부에 국선배정이 되어 한편으로는 애를 먹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색다른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알다시피 인천에는 영종도국제공항이 있고, 인천국제항만터미널이 있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범행을 저지른 후 출입국을 하다가 체포되는 경우 그 재판은 모두 인천지방법원에 관할권이 있다.외국인 사건을 맡아서 국선변론을 하는 것은 내국인사건보다 몇 배는 더 고달픈 일이다.

우선 부딪히는 문제는 언어이다. 외국인 피고인과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접견을 할 때마다 통역인과 시간을 약속해야 하는 어려움에 따른다. 변호사가 통역인을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지정하는 통역인만 대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중국어, 일본어, 영어처럼 흔한 외국어를 사용하는 통역인은 비교적 연락하기 쉽다. 하지만 몽골어, 힌두어, 파쉬툰어 등을 쓰는 통역인은 인천에서 구할 수가 없고 서울과 안산 등 인근도시에서 어렵게 구하기 때문에 멀리서 와야 하는 통역인과 접견날짜를 잡는 것부터 쉽지 않다. 

몇 배 더 고달픈 외국인 사건

어렵게 통역인과 날짜를 잡고 구치소에 가서 접견을 해도 통역인을 통해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국인보다 4배정도 시간이 더 든다. 

피고인들이 한국 법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접견할 때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낱낱이 설명해야 하고, 피고인도 그 만큼 궁금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훨씬 더 힘이 든다. 

뿐만 아니라 객지에 와서 구속이 된 외국인들은 이 나라의 법에 대하여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 변호인인 나는 “우리나라 법은 이러이러하게 선진화되어 있어서 당신에게 충분히 변론권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상세히 설명하곤 한다. 모든 피고인들에게 매번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 이것 또한 번거롭다. 

외국인을 변호하면서 나라마다 국력차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피고인이 자국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영사관에서 재판에 관심조차주지 않는 나라가 있는 반면, 재판할 때마다 영사관직원이 방청하여 혹시 자국민이 재판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지 철저하게 감시하는 나라가 있다. 

올해 맡았던 어떤 일본인 피고인의 경우는 일본 영사관에서 ‘한국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담당 외교관이 나와서 철저하게 재판을 방청했는데, 그는 여름휴가조차 쉬지 않고 재판을 체크하기위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한편 외국인변론을 하다보면, 한국의 수사 과정을 세계수준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예를 들어 재작년에 내가 변호했던 5명의 말레이시아인들 사건이 그러한 예이다. 그 사람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신용카드를 위조한 후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 고가의 물품을 산 후 출국하다가 인천공항에서 신용카드부정사용죄로 체포되었는데, 내가 구치소로 가서 그 중에 1명을 접견하자 정말로 서럽게 엉엉 우는 것이었다. 

‘유죄 협상’과 말레이시아인 사건

왜 우느냐고 물어보니 원래 자기는 심부름을 한 사람에 불과하고, 나머지 공범들은 마피아조직원들인데 자기가 맨 처음에 잡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고인은 체포될 때 결혼식을 불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에 선처를 요청하자 “만약 당신이 수사에 협조를 하여 나머지 공범(마피아들)들을 잡게만 해 준다면 당신만은 석방해 주겠다. 공범들에게 당신이 수사에 협조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과 당신 가족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검찰이 약속을 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른바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제도=plea bargaining)’가 없기 때문에 검찰이 그와 같은 유죄거래를 할 수가 없는데, 이를 모르는 피고인은 한국 검찰한테 권한이 있는 줄로 잘못 알고 공범들을 모두 체포하게 해 주었다. 

막상 검찰은 애초의 약속과 달리 그 피고인을 다른 공범들과 똑같이 구속 기소해 버렸다. 그 결과 그 피고인은 결혼식을 하기는커녕, “수사과정에서 한국 검찰의 수사에 협조했다”는 사실이 마피아조직원들인 공범들에게 모두 누설되어, 말레이시아에 있는 가족들까지 협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혹시 통역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피고인이 착오를 일으켰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피고인의 말대로 수사기관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여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피고인이 나중에 한국 검찰에 느꼈을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검찰총장이 ‘플리바게닝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후부터 그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위와 같은 사안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러한 제도를 시행하여 외국인이 한국 수사기관을 신뢰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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