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녀 <벽속의 요정>을 보고와서
- Posted at 2008/02/28 16:00
- Filed under 문화예술
3년 전 초연 때도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흐른 세월이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도리어 젊어진 듯한 모습이다.
내일 모레면 60이 되어간다는 것이 도대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기생활 수십 년 만에 모노 드라마는 처음이었다던 초연 당시 그녀는 1인 30역 이상을 혼자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다. “여배우 시리즈” 작품의 하나였다. 3년 뒤 그녀의 연기는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을 만 했다.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고, 기립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연기자이면서 후학을 기르는 교수이기도 한 김성녀. 일본작가 후쿠다 요시유키(福田義行)가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쓴 작품을 젊은 희곡작가 배삼식이 우리 역사를 무대로 번안해 낸 연극이자 뮤지컬이기도 한 <벽 속의 요정> 주인공이 그녀다. 예술 감독은 그녀의 남편 손진책. 어린 아이 순덕이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노파가 되기까지 40년의 시간 속에서, 온갖 등장인물을 연기해낸 김성녀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그녀의 몸으로 우리의 뇌리와 가슴에 기록해내는데 성공했다.
러시아 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볼가 강을 노래한 러시아 민요, 사회주의, 토지분배. 이념, 빨갱이, 추격, 전쟁 등의 단어가 과거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생과 사가 갈리는 기로에 서게 되는 절벽 끝이 그 단어들의 적나라한 정체다. 그 현실을 헤쳐 나온 한 슬픈 여인과 그녀의 딸의 성장사를 통해, 이 땅의 백성들이 어떤 시절을 겪어왔는지를 우리는 <벽 속의 요정>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런 세월이 벽 속에 유폐시켜 버린 한 사나이. 그는 순덕이의 아버지이자, 얼굴 없는 요정처럼 이 가정을 소리 없이 지켜낸 고독한 가장이다.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벽 밖으로 걸어 나온다. 시대는 변했고, 벽 속에서 숨어 지냈던 그는 아버지로, 남편으로 생환해온다. 청년이 노인이 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벽은 그를 보호하는 안전지대이기도 했지만, 질식시키며 서서히 시들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벽은 허물어지고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은 광장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혼신의 힘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김성녀는 그 진실을 때론 가슴 저리게, 때론 유쾌하게 그리고 때론 고독하면서도 결코 그대로 홀로 버려지지 않는 흡인력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막이 내리고, 그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극 속의 세월과 삶은 김성녀의 무대로 해서, 어느 새 모두의 눈물이 되었던 것이다. 벽 속에 유폐되었던 역사는 그렇게 해서 위로를 받는다. 좋은 연기자를 가진 시대는 이래서 행복하다. 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영혼이 있는 시대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 이 글은 메트로 서울(2008. 2. 28)과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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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부럽네요..
좋은 뮤지컬을 보고나면 그 청량함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특히나 김성녀 주연, 손진책 감독이라면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김성녀씨를 아주 좋아하는데 벌써 60이 되어간다니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김성녀씨 같은 배우는 한세대안에 좀처럼 다시 나올 수 없는 보배같은 존재지요...
다음에는 저도 좀 데려가 주시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