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死黨)의 늪에 빠진 민주당
- Posted at 2008/12/13 19:28
- Filed under 시사
김형준 | 명지대 교수·정치학
정체성(正體性)의 사전적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이다. 정체성(停滯性)은 ‘사물이 발전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는 특성’을 말한다.
그런데 한 개인이나 조직은 정체성이 없으면 방향성을 잃고 정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체성과 관련된 이와 같은 경험적 법칙을 민주당에 적용해보면 정부 여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왜 10%대에 정체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은 당의 이념과 정책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불명확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러한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당내 합의도 없고, 국민 설득도 보이지 않는다.
대연합에 기대면 정체성 확립에 오히려 역효과
최근 민주당에서 과거 열린 우리당 핵심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야당다운 야당’을 기치로 개혁 성향인 민주연대가 출범했다.
민주연대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강도높은 투쟁만이 민주당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편, 당내 보수성향 의원들은 당 지지율은 대정부 투쟁성이 아니라 민생을 챙길 때만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무엇이 민주당의 지향점이고 민주당이 어디로 갈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사회당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생민주공동회의 등 민주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 및 사회단체가 거의 망라된 민생민주연석회의가 결성되었다.
대연합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민주당 특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강화하는 데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민주당이 대연합의 일원으로 행동한다면 굳이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봉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깜깜한 터널에 갇혀있는 민주당으로서는 그래도 대연합에 기대고 싶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 혼돈’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제1야당으로써의 존재 이유와 위상을 스스로 허무는 행동을 하게 되면 민주당에 대한 일체감은 없어지고 국민의 지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이 사회단체와 연대하는 것은 비상시국에서만 가능해야 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맨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을 제일 먼저 하게 되면 뒤죽박죽이 되어 방향성을 잃게 되듯이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진보학자가 대연합에 대해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비판했겠는가? 민주당은 “민주·통일은 80년대 의제에 불과하다. ‘배가 고프다’는 서민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해서 MB에게 정권을 무주공산으로 내준 마당에 연대를 하려면 정확한 처방과 올바른 진단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이 진보학자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서민과 중산층 위해 지옥까지 갈 수 있어야
그런 의미에서 당 지도부는 민주와 민생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경계인처럼 행동하지 말고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국민 체감 우선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특히, 당 대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즉생의 각오로 무기력에서 벗어나 소신 정치를 펼쳐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길이라면 악마와도 키스할 수 있고, 지옥까지도 갈수 있다는 단호함과 용기를 보여야 한다.
대선 참패 1주년을 맞아 왜 정권을 야당에게 넘겨줬는지 철저한 반성과 과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실패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 백서를 읽고 또 읽어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때만이 서서히 죽어가는 사당(死黨)의 늪에서 민주당을 구해 낼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내일신문 '08. 1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