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후계 구도 문제



김종욱|P&C정책개발원 객원연구위원/동국대학교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 연구교수



○ 후계 구도 문제, 역사적 과정 통해 살펴 봐야


- 북한의 후계구도 문제와 관련, 3대 부자세습, 집단지도체제, 권력쟁투 등 몇 가지
  시나리오들이 개진되고 있는데 이런 예측의 근간에는 김정일 개인독재체제,
   군부중심 사회라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임

   ; 북한사회가 김정일 개인의 막강한 권한이 작동하고 있으며, 군부 중심의 ‘선군정치’
     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역사적 과정과 맥락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함


-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자면, ‘수령’으로 상징되는 현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1967년부터임

   ; ‘수령’ 이란 용어의 북한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이전까지 소급될 수
     있지만 실체화된 권한과 담론적 작동을 고려할 때, 1967년 시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함


- 근 3년간의 정비과정을 통해 1970년 당 대회와 1972년 주석제를 도입하면서 강력한
   일인 중심 위계적 국가체제와 후계구도가 만들어졌음

   ; 그 과정에서 수많은 권력 상층인사들이 숙청당했고, 중.하위 관료들이 검열과 정치적
     처벌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되었음

   ; 이 시스템은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심각하게
     흔들렸음


○ ‘혁명의 수뇌부’ 라는 용어에 주목해야


-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현재에 적용한다면, 1994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김정일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일종의 ‘정비기’였다고 할 수 있음

   ; ‘정비기’의 성격은 공세적인 구조화라기보다는 방어적 구조화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음

   ; 그 이유는 이 기간 동안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비상사태와 이에 뒤이은 혼란,
     그리고  계획경제의 붕괴와 초유의 자연재해 등이 발생했기 때문임


- 이 시점에 새로운 방식의 권력구조 또는 지배구조가 구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약 3년간의 정비과정을 거쳐 제기된 북한의 노선은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건설’
   이었고, 그것의 지배구조로서 ‘국방위원회체제’가 새롭게 만들어졌음

   ; 이 기간 동안 김정일의 공개 활동 중 50~70%는 군 관련 활동이었는데 군 관련
     활동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북한이 표방하는 ‘선군정치’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됨

   ; 그러나 역으로 보면 군 관련 공개 활동은 새로운 권력구조와 지배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일종의 교환구조 구축을 위한 기간으로도 파악할 수 있음


-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인데, 이 용어를 둘러싸고 김정일 개인을
  지칭(단수)하는 것으로, 김정일과 후계자를 지칭(복수)하는 것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음


- 필자는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가 북한판 ‘집단지도체제’의 ‘원형’적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함

   ; 『김일성저작집』(김일성의 글, 발언, 담화 등을 담은 책)을 보면, 김일성은 1991년
      ‘우리당의 수뇌부’라는 집단으로서의 ‘수뇌부’를 표현한 적이 있었음

   ; 따라서 김일성 재임기간 동안 수뇌부는 보편적 의미의 “어떤 조직이나 단체, 기관의
     가장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란 집단을 지칭하는 의미였음


- 그러나 ‘김정일체제’에 들어서면서 ‘혁명의 수뇌부’는 대중적 용어로 제기되었음

   ; ‘혁명의 수뇌부’라는 단어가 김정일 명의로 최초 등장한 것은 1996년 4월이었고,

   ; 1997년 1월 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혁명의 수뇌부의 결사옹위’
    라는 표현을,

   ; 1999년 1월 1일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며 당의 령도따라’와 ‘평양은 혁명의
     수뇌부가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심장’이란 표현을 각각 사용함


- 그 이후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함

   ; 특히 2003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이후 전병호(최고인민회의 대의원자격심사
    위원장 겸 국방위원회 위원)는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며 공화국의 기치 밑에 주체의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타는 결의를 온 세상에 뚜렷이 보여준 력사적 사변
    (조선중앙통신, 2003년 9월 3일)”이라며 대의원들에게 김정일과 ‘혁명의 수뇌부’에게
    충성할 것을 강조함


- 그리고 2004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10여 차례나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가 호명
   되었는데 특히 이 내용 중 주목할 대목은 “지난 10년간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우리 혁명의 수뇌부의 절대적인 권위와 령도 체계의 확고 부동성,
   백승의 정치실력이 만천하에 과시”되었다는 부분임

   ; 이미 1994~1997년 사이에 김정일의 상징권력과 실질 권한을 보장하며,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핵심권력층) 간의 교환관계가 구성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음

   ; 필자의 판단은 1998년 국방위원회 체제의 시작과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이
    집단지도체제의 ‘원형’이며, 2004년 신년공동사설의 “지난 10여 년 간…”이란 문장의
    맥락을 유추할 때, 이 시점을 전후로 초기 수준의 작동 메커니즘이 완성되었다고 판단됨


○ 구축되어 온 집단지도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 될 듯


- 올해 들어 국방위원회 조직이 확대되고 있으며, 국방위원회 소속이면서 겸직을
  했던 핵심 인물들이 전임형태로 전환되고 있는데 군부 인사 중심에서 점차 다른
  분야의 인물들이 국방위원회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 이는 국방위원회가 실행권한까지 점차 확대하고 있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군 장성 출신들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임명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국방위원회-군부-조선노동당의 핵심실세들을 매개로 전개되는 일종의
  교환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으로 판단됨

   ; 노동당 조직의 경우, 김정일이 장기간 직할체제로 장악했기 때문에 노동당 핵심
    실세들(장성택, 이제강, 이용철 등)의 권한은 막강하겠지만, 권력구조를 둘러싼 교환
    관계의 변화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함


- 확인되고 있는 국방위원회 구성을 보면, 김정일(국방위원장, 총비서),  조명록(국방
  위원회 제1부위원장 및 인민군 총정치국장), 이용무(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전 인민군 총참모장), 리명수(국방위원회 위원 및 행정국장,
  전 인민군 작전국장), 김일철(국방위원회 위원 및 인민무력부장), 전병호(국방위원회
  위원 및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 주상성(국방위원회 위원 및 인민보안상), 백세봉
  (국방위원회 위원), 김양건(국방위원회 참사 및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옥(국방위원회
  과장) 등이다.

   ; 주상성의 경우, 철직되어 아직까지 복권되지 않고 있는 전임 인민보안상 최룡수가
     국방위원회 위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국방위원회 위원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


- 또한 중국의 북한 관련 소식통들의 경우도 2000년 이후 북한이 3대 세습보다는 집단
   지도체제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를 차지했음

   ; 개인 일인 독점 권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와 감시가 전일적으로 작동
     가능해야 하며,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막강한 공권력과 이를 뒷받침할 물적
     자원이 전제되어야 함

   ; 또한 북한사회의 상징권력으로서 상징화된 역사적 정당성과 현실적 실적이 확보
     되어야 함

   ;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북한의 현 상황과 전개될 미래의 상은 이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며, 이런 사실을 북한 지도부 스스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임


- 따라서 이런 준비는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이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임


- 즉 김정일의 상징권력과 실질 권한을 한 축으로 하고, 핵심기관(군부와 노동당 핵심) 
   및 인물의 일정한 자율적 자기 재생산을 한 축으로 하는 충성과 자기재생산의 조합
   (새로운 교환관계)으로서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음


- 따라서 북한이 조만간 혼란과 함께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개연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됨

   ; 오히려 구축되어 온 집단지도체제의 ‘원형’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방향만이 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 또는 개인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임


- 특히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결정적 시점으로 강조해왔는데, 2012년은 김정일이
   70세가 되는 해이기도 함

   ; 아마도 이 시점에 북한식 새로운 권력구조가 실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개연성이 높으며,
     또한 결정적 판단을 할 시점이기도 함

   ;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도 현재의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중기적 남북관계의 방향과 실천적 내용을 차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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