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순 ( 전 EBS 방송 본부장, 공정무역연합 대표)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는 타고르는 “사람은 환경과 더불어 성장하고 또 환경과 결합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실현하고 확대해 간다.”며 일찍이 환경의 중요성을 예견하였다. 타고르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사람은 미디어 환경과 더불어 성장하고 또 미디어와 결합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실현하고 확대해 간다.”며 사람과 미디어는 생태적,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도 강조하였을 것이다.


 미디어의 확장이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는 맥루한의 지적처럼 현대인은 미디어를 통해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현실 경험은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미디어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 사회, 문화의 변화와 발전에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미디어 가운데 텔레비전 방송의 위력은 대단하다. 방송은 사람들을 하루 서너 시간씩 TV 앞에 앉혀 놓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온갖 세상일을 전하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방송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좌우할 만큼 권력화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방송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방송사와 종사자들의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면 지구환경 보고서가 나오듯 미디어환경 보고서가 나와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


 우리 방송은 영리를 취하기 위한 시청률 높이기가 모든 방송행위의 목적이고 최고의 가치인 양 되었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남녀 간의 애정과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줄줄이 이어지고 신변잡담을 늘어놓는 연예인들의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이 주요 시청시간대에 집중되어 있다. 예능프로그램의 기형적인 비만증은 상대적으로 공익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왜소하게 만든다. 우리 방송은 다양성을 상실하고 획일화 되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가 균형을 잃고 신음하는 데에는 공영방송이 일정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성과 공익성 구현이 생명인 공영방송마저 자신의 사명과 본분을 망각하고 영리추구를 위해 시청률 경쟁의 늪에 빠져 있다. 방송이 시청률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오존층의 구멍이 더 크게 뚫리듯 사람들의 정신적 공황의 구멍은 더 커질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도
DMB, WiBro, PMP, IPTV 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 장치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로 세계는 지식기반사회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 방송도 지식기반 사회에 걸맞게 탈바꿈해야 한다.


 지식기반사회의 핵심가치는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력에 있다.
방송기술의 발전으로 채널이라는 그릇의 모양은 다양해졌으나, 그 그릇에 담아낼 콘텐츠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지금처럼  연예 오락 영역의 획일화된 콘텐츠를 양산하고 외국의 값싼 콘텐츠에 의존한다면 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외래 문화에 지배당하기 십상이다. 마침내 우리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창의력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세계화시대 한미 FTA영상시장 개방에 대응해서라도 우리의 정신과 문화적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방송 환경과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


 더욱이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이 미디어 생태계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 이제 미디어는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가야할까? 우선 미디어는 개방, 공유, 소통이 중심이 되는 2.0 시대를 열어야 한다. 새로운 방송은 지식 창조의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 지식 정보 은행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지식창조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는 지식네트워크를 지원함으로써 창조산업에 기여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이 골고루 참여하는 건강한 시민 공론장이 돼야 한다.
사회적 갈등의 해소와 민주주의의 발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통합의 사회를 이루어 내는데 기여해야 한다.


 또 올바른 시민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의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며 물질만능 주의에 종속된 삶의 방식,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에너지 과소비적 삶을 바꿀 수 있는 인식의 전환과 실천에 기여해야 한다.


 방송사와 그 종사자는 시청자를 시청률을 높이는 도구쯤으로 여기지 말고 진정으로 모시고 섬겨야 한다. 시청자가 TV프로그램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학습자이기를 바라야 한다.


 자연생태계가 건강해야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재앙도 막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듯이 미디어 생태계가 건강성을 유지해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지구와 인류의 생존이 달린 중차대한 과업 수행을 위해 방송이 올바른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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