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들 속에서
- Posted at 2008/02/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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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 속에서
요사이 책들이 꽤나 낯 두꺼워졌다. 몸집도 엄청 불어나고 있다. 한참 독자들의 시선을 모았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600쪽에 달하고, 학문적인 무게를 가진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800쪽에 이른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에이드리안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무려 860쪽이 넘는다.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300쪽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일단 500쪽이 넘으면 이거 읽다가는 골치 아파지겠다고 지레 고개를 돌리는 독서대중들 앞에서 출판사들은 무게가 나가는 책 출간에 여간해서 자신을 내기 어려웠다. 단편도 제대로 보지 않는 판에, “장편은 웬만해서는 읽지 않은 세대”라고 알려진 젊은이들에게 무슨 수로 그 두꺼운 책을 읽히겠는가라고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보니 종이낭비에 가까운 책들의 어지러운 행진이 이어져왔다. 한마디로 함량부족의 책들이 난무했고, 광고만 잔뜩 부풀려 현혹시키는 반문화적인 행태가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이 땅의 정신적 기틀을 잡아줄 출판문화가 아니라, 돈 버는 데에만 몰두하는 영업문화만 발달해버린 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바는, “두꺼운 책은 좋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 내는 일에도 시간이 더 걸리고 그 책을 읽는 데에도 상당한 노력이 드는 종류의 책들이 출현하고 있는 현실이 눈길을 끌고 있어서이다. 그건 출판문화계의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우리사회의 지적 능력의 변화도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과 성찰이 풍부하게 주어지는 책은 쉽게 쓰기도 어렵고, 재빨리 읽어낼 수도 없다. 우리 사회가 워낙이 앞뒤 안 가리고 “빨리 빨리”를 진군의 깃발처럼 흔들고 사는 버릇이 깊어, 그런 책들은 태어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깊이와 무게, 그리고 지적 권위를 가진 생각이 탄생하는 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이 이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한 가지 여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두꺼운 책들이 대부분 “번역서”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지적 역량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100년을 내다보고 교육철학을 세우는 정책이나, 문화와 역사를 고민하는 도시건축의 사상, 그리고 지구촌 전체를 사고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지성은 현실이 되기 간단치 않다.
그래도 쪽 수가 많아진 책들의 등장에 희망을 갖고 싶다. 쪽 수가 많아지는 것, 이거 괜찮은 거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식인들도 점차 그런 책들의 필자가 되어가는 걸 보고 싶다. 그러려면, 시인 김수영의 질타를 아프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 이글은 "메트로서울"('08. 2. 16)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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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진리의 길 2009/01/10 11:29 Delete신의 이미지 지금까지 보아 온 코메디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브루스 올마이티』이다. 사실 그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놀랬던 기억이 있다. 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신이 인간처럼 질투도 하고 사랑(연애)도 하고, 배고픔과 고통도 느끼는 등 인간과 다를 바 없이 나온다. 이는 다신론의 전형적인 양태들인데,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도 신(아마도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듯)이 무슨 옆집 아저씨처럼 농담도 하고해서 친근하게 다가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