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탄 후 알려준 교훈

김민웅 / 성공회대 교수, 시민의신문 발행인


   진정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극
           

 

로마가 천년 제국이었다고 하지만, 정작 로마가 제국으로 존속한 기간은 4백년 남짓이다.  일본의 막부체제도 명치유신으로 붕괴되기 전까지 4백년의 기간을 보낸다.  그에 비하면, 조선조 5백년은 만만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그 세월을 함께 했던,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이 나라 역사를 지켜보았던 숭례문의 나이는 6백 살이다.  그걸 이 못난 후손들이 하루사이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서로 질타가 한참이다. 책임을 따지는 기술적, 행정적 논란도 치열하다. 정치적 책임을 둘러싼 논쟁도 비수가 번뜩인다. 그러나 정작 그러는 우리 자신은 과연 어떤가? 언제 그리고 알뜰쌀뜰하게 이 숭례문의 문화적 가치를 아끼면서 일상을 살아왔던가? 분명 별로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불에 탄 숭례문은 고스란히 우리의 자화상이다.  조상과 후손 모두에게 우리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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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역사와 문화에는 담을 쌓고 있다.  철학도 없이 외국어 학습이 교육의 전부라고 여기는 머리에서 역사와 문화는 벌써 싸늘하게 죽은 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발밑에 어떤 세월의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어디론가 달려가기에 바쁘다.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자신에게 진정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이른바 선진국 흉내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선진국에서 꼭 배워야 하는 것은 뒤로 하고 그럴 싸 해 보이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개발논리는 문화적 담론을 제치고 여기저기를 마구 파헤치고 있으며, 서울만 하더라도 역사의 현장을 이미 수없이 잃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화재 개방을 한때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가 이젠 꿀 먹은 벙어리다.  물론 문화재 개방이 뭐가 문제이겠는가? 모두가 공유하는 국가적 자산을 아끼는 마음을 길러내면서 문화재가 우리의 정신적 요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방이 곧 만능이 아님을 우리는 또 한 번 절실하게 목격한다. 한-미 FTA는 개방을 구호로 내세운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다그친다.  하지만 개방에 못지않게 지켜낼 수 있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번에도 여실히 보고 있지 않은가? 농촌의 소중함, 환경의 가치가 한번 훼손되면 과연 제대로 복구할 길이 있는지 암담하지 않은가? 일단 잿더미가 되면 본래의 가치대로 복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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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숭례문의 모습



6백년의 역사가 산 채로 불길에 휩싸였다.  숭례문 하나 탄 것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역사, 자신의 민족적 성취, 문화적 우선순위에  대해 둔감해온 세월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숭례문은 오래 전부터 거기에 서 있긴 했지만 그 숭례문이 증언하고자 하는 역사는 우리의 뇌리와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유적현장의 전시물처럼 도심 속에 뎅그러니 남아버린 숭례문이 이러한 상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한들 아쉬운 것이 스스로에게 있었을까 싶다.  국보 1호라고 치켜세우지만 숭례문은 홀로 외롭게, 거대한 건물들이 굽어보는 자리에서 아주 힘겹게 자신의 역사를 지탱해왔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걸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었다고 여기지는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사라지니 도리어 안타까워하는 것을 그나마 보는 것이 숭례문에게 남아 있는 그 나마의 위로였을까? “내가 없어져보니 이제야 비로소 나를 알아보는가?”하고 숭례문의 잔해는 우리를 향해 울부짖고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불을 지는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숭례문을 지켜내지 못한 관계당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밀리고 밀려 더 이상 어찌 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어떤 재앙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숭례문은 자신을 태우고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경고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불에 탄 숭례문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걸 복구 운운으로 재빨리 가리려 하기보다는 한참을 그대로 두고 우리는 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숭례문의 기술적 복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의 복구이기 때문에.......


      * 이 글은 "시민의 신문"('08.2. 15)과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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