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박 개헌 개봉박두
- Posted at 2008/04/12 22:26
- Filed under 시사
공희준 / 정치평론가
논술시험 교재에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 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뉴라이트가 새로운 한국현대사 교과서를 발간한답시고 까부는 배경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경구인 셈이다. 뉴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역사의식이 없다. 역사의식을 가진 인간들이 뉴라이트 따위의 생양아치 노릇을 하겠는가?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다. 대안교과서는 성동격서의 전형적인 기만전술일 뿐이다. 뉴라이트 녀석들이 다시 쓰려는 것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다. 그들 중에서 나름대로 머리가 돌아간다는 신지호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입성했으므로 헌법에 대한 공격은 18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조만간 포문을 열 걸로 예측된다.
헌법을 고쳐 쓰는 행위를 간단히 일컬으면 바로 개헌이다. 1987년에는 두 가지 실수가 저질러졌다. 진보개혁진영의 관점에서는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가 천추의 한을 남긴 과오였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시키는, 저들 입장에서 치명적 자충수를 두었다.
것도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종인에 의해서. 헌법 제23조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와,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가 그것들이다. 이 귀중한 내용이 그 험한 시절에 어떻게 헌법에 들어갈 수가 있었는지 참으로 미스터리다.
요 조항들이야말로 부자들에게는 눈엣가시다. 전경련에서 이를 뻔질나게 문제 삼는 이유다. 조중동 또한 틈만 나면 해당 조항들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며 트집을 잡기 일쑤다. 과장을 좀 보태면, 이 조항들만 주도면밀하게 활용한다면 타워팰리스를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보육시설로 당장 개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과서를 미끼로 저들은 헌법을 낚으려 한다. 헌법의 경제민주화 문구들만 대불공단 전봇대 뽑듯이 뽑아낸다면 강남부자들의 탐욕과 독점재벌의 횡포를 제어할 모든 법률적ㆍ제도적 장치들이 일거에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까닭에서다. 그럼 이건희가 특검에 소환되는 사태도 발생하지 않으리라. 삼성가의 재산권이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게 행사된 것이 삼성비자금 사건의 궁극적 원인이므로.
경제민주화 조항들 삭제하자고 개헌에 착수하는 일이 얼마나 부당하고 파렴치한 짓거리인지는 이명박 정권 스스로가 잘 안다. 따라서 적당한 명분과 포장이 필요하다. 개헌을 추진할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릴레이 집권을 계기로 대통령 중심제의 권위는 여지없이 실추됐다. 역사는 노무현과 이명박이 통치한 10년을 ‘천박한 10년’으로 분명 기록할 게다. 천박한 10년을 수구기득권 세력은 알토란 같이 써먹을 태세다. 신자유주의에 철두철미 봉사하는 ‘노명박 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서민대중의 경제민주화 여망에 대못질을 하는 기간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의원내각제가 금권정치와 과두정치의 폐해를 극대화시킬 것임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현재는 내각제의 부작용보다는 노명박 정권이 일으킨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와 염증이 국민들 사이에 더욱 만연한 상태다. 더군다나 진보개혁진영 가운데 몇몇 얼빠진 종자들 역시 내각제를 동경한다. 일단 원내에 진출한 다음 잡다하고 현란한 소위 ‘경우의 수’를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 탓이다. 예컨대 노무현은 영남친노세력의 정치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 제안은 내각제 개헌에 관한 여론을 떠보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이명박은 취임한 지 한 달 반 만에 퇴임 후의 신변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옹색한 처지로 내몰렸다. 노무현과는 달리 2MB한테는 이면거래를 시도할 만한 강력하면서도 코드가 통하는 야당 대권주자가 없다. BBK는 이명박 정권 말기에 재점화될 게 확실하다. 그때 검찰수사의 방향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명박 최악의 시나리오는 박근혜의 청와대 입성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유지될 경우 박근혜의 집권확률은 대단히 높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도 저지하면서 현행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도 적출할 일석이조의 대책은 없는 것일까?
여기서 내각제 개헌이 천군만마의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단독으로 거사를 도모했다가는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게다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개헌에 일사불란하게 협조하리란 보장마저 없다. 우선은 박근혜계 의원들부터 격렬하게 반발할 테니까.
모로 가도 200석만 만들면 그만이다. 명분은 대충 포장하면 된다. 진보세력의 일부도 내각제에 찬성한다고. 이명박 정권에 내각제 개헌의 구실을 봉헌할 진보세력의 일부는 과연 누가 될까? 다들 정답을 알 터. 친노세력이다.
경상도 노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정치웹진들에서는 내각제 지지의견이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발설돼왔다. 노무현이 집착했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내각제적 발상의 산물이다. 노무현 일파가 떠드는 민주화에 경제민주화는 포함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헌법 23조 2항과 119조 2항은 ‘진보세력의 일부’에게는 발가락의 무좀만도 못한 하찮고 해로운 존재에 불과하다. 대신 친노세력은 국회의원 중선거구제를 반대급부로 챙겨서 꿈에도 그리던 영남교두보 구축의 숙원을 달성하게 된다. 민주당에 온갖 저주를 퍼붓고 탈당한 유시민과 김두관 등이 경상도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일파가 몹쓸 호남 지역주의 정당으로 낙인찍은 통합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경상도에 깃발을 꽂았다.
재적의원 3분의 2 확보는 예상외로 어렵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체질적으로 내각제에 매력을 느낀다. 금배지만 가슴에 달면 개나 소나 정권을 잡을 수가 있기에. 개나 소나 국가권력을 쥘 수 있다는 것이 노명박 정권의 출현을 거치며 이미 입증된 바이긴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가 다시금 떠오른다. 한국사회는 20여년 만에 또다시 개헌과 호헌으로 첨예하게 분열될 전망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의 폐기와 내각제 개헌을 패키지로 묶은 노명박 세력이 개헌을 주장하고, 그것들을 사수하고 대통령 중심제를 지키려는 진영이 호헌을 외친다. 이제라도 많은 사람들이 노명박의 실체를 깨닫고 똥과 된장을 제대로 구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