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사업의 개념부터 확 바꿔라


                                                  이현승 / GE에너지코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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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기업에는 향후 5년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한국 경제의 진로를 두고는 제조업 위주냐 서비스업 위주냐를 둘러싼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과 논의의 기저에는 세계화, 정보화 그리고 첨단기술 및 생명공학의 발전 등으로 인간의 생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현실이 있다. 과거의 제품과 지식이 오늘날에는 유용하지 않게 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오늘 유용한 제품과 지식이 내일 유용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성공이 현재나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이른바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짧아진 제품과 지식의 수명은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지식 축적을 요구함으로써 생존을 위한 경쟁을 훨씬 치열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성장 없는 현상유지는 단순 정체에 그치지 않고 생존 그 자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환경에서 살아 남고 나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 이른바 상자 밖에서의 사고(out-of-box thinking)가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기업 전략은 시장 및 사업의 개념(concept)을 새로이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기존의 시장 및 사업 개념에 연연해서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고 결국 낙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1981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장에서 1등 또는 2등이 되자. 이를 위해 고칠 것은 고치고, 팔 것은 팔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자’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는 매우 위력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1등을 강조하다 보니 전체 시장의 규모를 축소하여 시장 점유율을 부풀리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잭 웰치 전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지 않도록 시장을 재정의하도록 규정하였다. 잭 웰치 전 회장이 쓴 ‘위대한 승리(Winning)’란 책에 따르면 이런 규정이 마련되자 사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성장을 위한 기회가 봇물 터지듯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장과 사업영역을 확대 정의하여 새로운 성장기회를 끊임없이 모색한 다른 예로 펩시와 질레트를 들 수 있다. 청량음료시장에 주력하고 있던 펩시는 전체 음료시장으로 대상을 확대했고, 면도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질레트는 남성용 미용제품의 20%만을 점유하고 있다고 사고를 전환하고 신제품개발을 추진한 결과 매출 증대를 가져왔다.

한편 기술 진보, 소비자 니즈의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는 시장 및 사업 개념 자체를 계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예를 들어 음반산업은 기술 발전에 따라 원반형 레코드, LP레코드, CD, MP3플레이어로 변화되어 왔다. 자동차 산업도 환경 규제에 따른 하이브리드 카(hybrid car)의 등장과 30%가 넘는 전자제품의 비중으로 인해 전기, 전자업의 속성을 더 많이 지니게 되었다.

과거 제조업 성장의 자금조달 및 중개 역할을 하였던 ‘금융업(金融業)’ 역시 기업 자금은 상대적으로 풍부해진 반면 장기자산 배분을 위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그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즉, 펀드 판매 또는 단순하고 표준화된 금융상품을 저비용의 채널을 통해 공급하는 ‘유통업(流通業)’적인 성격과 고객 맞춤형 고부가가치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융업(智融業)’적인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은행업에서의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업무, 증권업에서의 자산관리 및 투자은행업무, 보험업에서의 라이프플래닝(life planning) 기능 등이 지융업적인 성격에 해당한다.

개념을 재정의하는 것, 이는 한국 경제가 향후 제조업 위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서비스업 위주로 가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의 바탕이 영국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Colin Clark)가 1940년 ‘경제진보의 제조건 (The Conditions of Economic Progress)’에서 사용한 1차 산업, 2차 산업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는 논의의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업도 명품 농산물의 경우에는 디자인, 마케팅 등의 부가적 요소로 인해 기존의 1차 산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조업의 경우에도 R&D, 디자인, 핵심 부품 개발, 마케팅, 서비스 등의 부가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기존의 2차 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GE에너지를 예로 들면, 에너지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근접할 정도로 변했고, 대표적인 제조업체였던 IBM은 IT 토털 솔루션 업체로 변신했다. 결국 제조업 위주냐 서비스업 위주냐는 논쟁에서 벗어나 기업활동에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전 과정의 가치사슬(value chain) 중에서 고(高)부가가치에 집중해 차별화하여야 한다. 그래야 가격경쟁력 있는 범용품(commodity)을 가지고 추격해 오는 중국 등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 산업, 국가 경제 모두 새로운 시장, 기업, 산업 개념에 기초하지 않고는 올바른 기업 전략, 산업 전략, 국가 전략이 도출되기 어렵다. 그리고 개념을 새로이 재정의하는 것은 무엇보다 고객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의 기업이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느냐는 차후의 문제이다. 바둑에서와 같이 희생이 따르더라도 선수(先手) 또는 선제권(initiative)을 확보할 때 미래의 성공을 이끌 수 있다.

* 이글은 조선일보 Weekly BiZ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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