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내일신문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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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기름 방제작업 자원봉사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은 자랑이고 부끄러움이다. 우리 국민도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한 것은 너무 뿌듯한 감동이었다. 그런데 사고를 낸 기업과 이를 수습할 책임을 진 정부, 그리고 사고원인 조사기관의 태도는 너무 부끄럽다.

1997년 일본 시마네 현 앞바다 유조선 침몰사고로 해안이 기름범벅이 됐을 때, 일본의 자원봉사자 대열이 부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일본 언론은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 자원봉사자 물결을 자랑했다. 연인원이 30만 명을 넘었다고 했다. 그 부러움을 보상해 주려는듯 우리 자원봉사자는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자원봉사자 100만명 넘어

생활 주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게 되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내 가형과 바다와 먼 산간벽지 내 고향사람들이 단체로 봉사를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바빠서 미처 못 갔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연말에 두 번을 갔다 왔고 세 번째 봉사를 계획 중이라는 어느 회사 직원들 말을 듣고는 그것이 ‘면피’를 위한 일과성 선심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신 봉사점수가 아쉬운 학생들과 ‘지시와 할당’에 따라 움직이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주류라는 이죽거림도 근거 없는 말놀음이라는 걸 알았다. 2002 월드컵 때 온 세상에 ‘우등 한국인’ 모습을 보여준 일에 비견할 만한 이번 자원봉사자 물결은 우리 국민의 성숙성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선진국 국민이 될 자질을 내외에 증명해보였다.

그런데 정부와 수사기관과 사고 책임기업의 대응이 여기에 걸맞는 수준이냐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생활고를 걱정하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주민들이 속출하는데도 아직 구호금이 지급되지 않은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자치단체장의 하소연에 따르면 채권양도양수계약서라는 것 때문에 많은 시일이 허송되었다 한다. 해양수산부가 피해주민 생계지원 예산을 내려보내면서 “나중에 받게 될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서 구호금이 제외될지 모르니 채권양수계약서를 받고 돈을 나눠주라 했다”는 것이다.  다 굶어죽는다는 아우성을 들으면서도 국제기구와의 분쟁 우려 때문에 돈을 안 주었다니 이런 정부를 믿고 사는 세상이 무섭기만 하다.

정부는 사고 열흘 만인 작년 12월16일 구호비 지원방침을 정했고 그로부터 열이틀이 지나 돈을 충남도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주말이다, 공휴일이다 해서 돈은 연말연시를 관청 금고에서 잠잤고 채권양수계약서 문제로 20여일을 더 허송한 뒤에야 일선 시군에 배정되었다. 그러나 지급기준 등의 문제로 돈은 아직 시군 금고에서 자고 있다.

달포가 지난 뒤에 내놓은 검찰의 수사결과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너무 단순해 보이는 해양사고 수사에 그렇게 오랜 시일이 걸린 이유를 모르겠다. 받은 측과 받친 측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쌍방과실이라는 수사결과는 더욱 어이가 없다. 어느 쪽에 더 큰 과실이 있는지를 가려 보상 책임문제를 빨리 결판내주기를 고대해 온 주민들은 “누구 약을 올리자는 거냐”고 분개하고 있다.

서 있는 차를 들이받은 도로교통 사고에 비교해 보아도 한쪽의 중과실이 분명해 보이는 사고였다. 그런데도 중과실 판단을 유보하고 쌍방과실이라니 이런 수사를 왜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쌍방과실 책임을 떠안게 된 삼성 측 대응은 너무 무책임하고 무성의해 주민들의 상경시위를 유발하고 말았다. 검찰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 말을 하겠다면서 굳게 입을 다물었던 삼성중공업 측은 수사결과 발표 날 일제히 신문에 사과광고를 게재했다.

실망스런 검찰 수사결과

미안함과 성심이 엿보이지 않는 사과 문안에 격앙된 수천 명 주민들은 다음 날 서울역 광장에 모여 기름에 범벅이 된 굴과 생선과 해조류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게 해서 삼성이 보상책임을 얼마나 면탈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세계 일류기업 삼성이 취할 태도가 그래서는 안 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언젠가 한국의 기업은 2류인데 4류정치가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다고 푸념한 일이 있다. 아직도 한국 기업이 일등이라고 믿는다면 온 국민을 실망시킨 사고를 낸 삼성이 일등의 모범을 보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 이 글은 내일신문 <문창재 칼럼>과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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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 [분류 전체보기] - 이번에는 혹시나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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